"철권" 무하마드 알리가 애틀랜타 올림픽개막식의 성화 최종 점화자로
등장했다.

초췌한 모습, 시종 떨리는 왼손, 몸을 채 가누지도 못하는 하체, 두손을
모아 어렵게 불을 붙이는 그의 얼굴에서 세계헤비급 무대를 제패했던
왕년의 모습은 볼수가 없었다.

개막식 직전까지도 극비에 부쳐졌던 성화최종 점화자로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알리가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8만여 관람객들은
놀라움을 금치못하면서도 "알리", "알리"를 열렬히 연호했다.

알리는 올림픽 여자수영 4관왕인 자넷 에반스에게서 성화를 넘겨받은
뒤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돌아서 떨리는 두손으로 가만히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알리의 성화에서 옮겨진 불은 천천히 줄을 타고 25m 가량되는 사각형
성화대를올라가 성화대에 불꽃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불치의 파킨슨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알리의 이날 모습은
보는 이들로하여금 인생무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알리는 여전히 중풍환자처럼 두 팔을 떨고 있었으며 불을 채화대에
옮기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지난 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알리는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으며3차례의 챔피언을 지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급 복서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파킨슨 병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며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도 유머를 잃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린이들의 꿈이며 불굴의 상징이며 흑인 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인이 우러러 보는 당당한 영웅이다.

마지막 성화주자가 결정되기까지 일반의 예상을 뒤엎은 반전이
계속됐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제일 처음 성화를 전달받은 이는 지난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전 헤비급 통합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

홀리필드는 주경기장 지하도를 따라 성화를 달려 그라운드 한가운데
설치된 원형 단상에 모습을 드러낸 뒤 트랙을 4분의 1정도를 돌았다.

이 때까지도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홀리필드나 다음 주자가 마지막
주자가 되겠거니 생각했다.

홀리필드는 지난 92년 바르셀로나 100m 허들 금메달리스트인 파라스케비
파툴리두 (그리스)와 나란히 성화를 잡고 다시 운동장 트랙을 반바퀴를
달렸다.

올해가 근대 올림픽 1백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므로 1백주년 올림픽
주최국인미국과 올림픽의 발생지인 그리스인이 나란히 성화를 채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예상됐다.

그러나 이 성화는 다시 수영스타 재닛 에반스에게 넘겨졌고 에반스는
이를 어둠속에 숨어있던 알리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알리가 성화를 올릴 때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웅장하게 울리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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