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은행의 지점장을 만났다.

골프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분은 필자에게 자신의 골프내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골프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을 무렵이었다고 한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의 자서전에서 김회장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골프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한낱 은행의 말단 차장에 불과한 자신이 골프를 치는 것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물론 그런 사실은 그당시 이제 갓 골프를 시작한 그분으로 하여금
골프를 더욱 자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단다.

하지만 십년이 지난 지금은 약간 후회가 남는다고 여운을 남겼다.

존 D 록펠러는 아주 광적인 골퍼이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처음 골프를 하고 나선는 포칸티코힐스에 소재한
자신의 영지에 네홀의 골프장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록펠러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곧이어 12홀을 증설하게
하고 또한 자신의 골프를 지도하여 줄 프로도 고용하였다.

그는 가능하면 한 홀이라도 더 돌 목적으로 자신과 동반 플레이어들이
홀과 홀 사이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도록 조치했다.

그는 연중 골프를 즐겼는데 겨울에 코스에 눈이 내리는 경우 이를
치우도록 일단의 일꾼들을 고용하기까지 하였다.

록펠러는 레슨에도 아주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한때 그는 슬라이스때문에 고민하던 중 자신의 슬라이스가 스윙할때
머리를 치켜드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슬라이스를 잡기 위해 젊은이를 한 사람 고용해서
자신을 따라 다니면서 자기가 스윙할 때마다 "회장님, 머리를 들지
마세요!"라고 소리지르게 하기도 했다.

록펠리는 97세의 고령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며칠전까지 골프를 즐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느날 록펠러의 별장을 방문한 한 젊은 기자가 있었다.

때마침 옹은 미스 버지니아.판.위라고 하는 여자와 코스에 나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이 젊은 기자와 한가로이 인터뷰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불세출의 이 거상은 멀리서 자기를 찾아 준 신문기자를
나몰라라 할만큼 불친절하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옹은 신문기자에게 "ONLY ONE QUESTION!"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자 젊은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졌다.

"귀하는 현세에 있어 온갖 일들을 생각한대로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도 삶에 미련이 있나요?"

그러자 옹이 대답하였다.

"있고 말고. 아직 골프챔피언이 되지 못했는걸?"

김우중 회장보다 록펠러가 더 큰부를 이루었고 그런 록펠러가 좋아했기
때문에 골프가 좋은 것이 아님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세상 곳곳마다 제 나름대로의 요미가 있으니 그 참맛을
즐기며 살라"는 채근답의 글귀를 좋아하는 필자는, 골프에 관해 이야기를
하자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저 "선입견 때문에 골프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