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를 치르다보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공을 세운 사람이 있다.

이번 한국의 월드컵 유치도 예외가 아니다.

월드컵 유치가 몇몇 개인의 승리가 아닌, ''전국민의 승리''이지만
그래도 일등공신은 있게 마련이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를 빼놓고 한국의 월드컵
유치를 이야기할수 없다.

국회의원에 현대중공업고문 한국프로축구연맹회장 등 굵직굵직한 직함을
갖고 있는 그는 한국이 월드컵 유치를 신청한 이후 2년여동안 세계 각국을
누비며 유치활동을 벌였다.

그는 한국이 분단국으로서 월드컵을 개최하게되면 그것은 남북통일,
나아가 세계평화에도 기여할수 있을 것이라는 명분과 이상으로 설득하는
한편 집행위의 이사를 존중, 공동개최도 수용한다는 유연한 자세를 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94년 5월 아시아축구연맹총회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FIFA부회장으로
선임된 것이 그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힘이 되었다.

부회장이라는 직함은 그에게 20명의 집행위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정회장은 2002년 월드컵이 ''21세기를 맞는 한국의 가장 큰 비전''중
하나로 보고 때로는 공식적으로, 때로는 일정을 밝히지 않은채
월드컵유치에 도움이 될만한 인사들을 만나고 다녔다.

특히 투표권을 쥐고 있는 FIFA 집행위원들을 밀착로비,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막판 공동개최를 이끌어냈다.

<>구평회 월드컵유치위원회 위원장

한국이 월드컵을 유치하는데 정몽준회장이 야전사령관이었다면
구위원장은 지휘관격이었다고 말할수 있다.

LG그룹 구본무회장의 종조부로 무역협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유치위원회에 재계인사들을 대거 포진시켜 유치활동의 재원을 마련하는가
하면 일선에서 정부와 국민들의 유치활동 참여를 유도해왔다.

구위원장은 특히 공동유치가 결정된 31일까지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유치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유명하다.

구위원장은 올들어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유치활동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기자들앞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한일간
유치상황을 ''5대5''로 표현하며 끝까지 유치활동을 독려했다.

물론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홍구 월드컵유치위원명예회장

유치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아 유치활동의 토대를 닦았고, 정부
각료로 입각한 뒤에도 한국의 유치활동에 직.간접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일등공신이다.

부총리 국무총리 신한국당대표위원 등 화려한 직함외에 개인적으로는
세계적 인사들과 교유가 많은 점이 유치활동에 원군으로 작용했다.

정회장이나 구위원장이 드러내놓고 유치활동을 벌였다면, 이위원장은
음지에서 조용히 유치활동을 도운 케이스라고 할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