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구연"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지켜본다는 월드컵은 흔히 이렇게 표현된다.

한국은 그 열광의 잔치에 지금까지 모두 4번 출전했다.

54년 스위스에서부터 94년 미국월드컵까지.

아시아권에서 본선에 4번 진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나 그 내용은
"좌절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만큼 월드컵축구, 아니 세계축구의 벽은 높았던 것이다.

한국이 처음 본선무대에 오른 것은 6.25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54년
스위스 월드컵(5회대회)이다.

첫 경기가 있기 바로 전날 취리히에 도착한 한국선수단은 피곤을 몸을
이끌고 도착 9시간만에 월드컵 데뷔전이라 할수있는 헝가리와 대결을
벌였으나 결과는 9-0의 참패였다.

한국은 5일후 터키와 2차전을 치렀지만 이번에도 7-0으로 대패했다.

두게임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16골을 허용해 예선탈락하고 말았다.

한국축구는 그뒤 오랫동안 월드컵과 인연이 없다가 32년만인 86년 멕시코
대회때 본선에 올랐다.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 불가리아와 한조를 이룬
한국은 이 대회에서 첫골, 첫 무승부의 월드컵 신기원을 이룩했다.

아르헨티나전(3-1패)에서 박창선이 월드컵 출전사상 첫 득점을 기록했고,
불가리아전에서는 김종부의 수훈으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이 월드컵사상 첫 승점을 기록한 순간이었다.

3차전인 이탈리아전전에서는 최순호 허정무가 2골을 넣었으나 3-2로
지고 말았다.

90년 이탈리아대회는 한국에 "수모의 대회"로 기록된다.

세 경기 모두 완패당하고 만 것이다.

1차전에서 벨기에에 2-0으로, 2차전인 스페인전에서는 황보관이 대포알같은
강슛을 뽑아내기도 했으나 3-1로, 마지막 우루과이전에서는 1-0으로 져
3패를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현지 언론들은 1차전이 끝난뒤 "한국은 드리블연습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치욕적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한국은 "16강 진출"의 꿈을 안고 다시 94미국 월드컵에 도전한다.

그러나 그 대회 역시 귀중한 경기경험과 가능성만을 인정받은채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스페인(2-2) 볼리비아(0-0) 독일(3-2패)과 함께 C조에 속한 한국은 2무1패
(승점 2)의 성적으로 아깝게 예선탈락했다.

특히 스페인과의 1차전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동점극을 이끌어낸 것은
"댈라스의 이변"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매스컴의 찬사를 받았다.

결국 한국은 94년 제15회 미국월드컵까지 모두 4번 본선진출한 25개국중
하나, 3회연속 본선진출한 18개국중 하나에 끼였다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16강에는 한번도 오르지 못하는 부실한 모습을 보여 줬다.

또 월드컵에 4회나 나가 모두 11번 경기를 치렀지만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11전 3무 8패가 성적의 전부이다.

2002년 월드컵도 유치한 마당에 이제 월드컵 본선에서도 1승을 거두어야
할 때가 된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