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나리오.

"한명이 초반연승,중반 부진,마지막주자가 마무리""두명 초반탈락, 두명
후반 대역전우승".

세계대회에서 한국의 우승은 이 두경우 중 하나다.

한국팀의 마지막우승이었던 제3회 진로배세계대회가 그랬고 93,94년의
후지쯔배 우승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나리오는 출전기사중 적어도 두명이 자기실력을 발휘해야
가능하다.

올초 동양증권배에서 바둑황제 조훈현이 혼자 4강에 올랐지만 무너졌다.

연이은 후지쯔배에서도 유창혁이 고군분투했지만 주저앉았다.

14일 끝난 제7회 TV아시아바둑선수권전에서 이창호-조훈현 사제콤비가
우승,준우승을 엮어낸 것은 이 시나리오가 여전히 유효할 것임을 보여줬다.

4인방중 최소한 둘의 건재가 이번대회로 확인됐다.

이창호는 일본,중국의 일인자 고바야시 사토루, 마 샤오춘을 차례로
꺾었다.

두 기사는 최근 여러대회에서 두각을 보였었다.

조훈현도 녜 웨이핑,오다케 히데오를 꺽고 건재를 과시했다.

세계바둑계는 한국의 독주에 제동이 걸리고 "신삼국지"의 막이 올랐던
터라 이번 우승은 더 빛난다.

한국바둑위기론은 과장이었음이 판명됐다.

이창호칠단의 우승은 감격스럽다.

그는 92,93년 동양증권배에서 연속우승하며 국제무대에 데뷔했지만
그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창호는 올해목표가 "후지쯔배 우승"임을 연초 배달왕기전을 2연패한후
밝혔다.

그러나 2회전에서 탈락해 무산됐고 "전관왕"의 꿈도 좌절돼 심난해
하고 있었다.

이번 우승은 그가 "더 큰 비상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바둑계
인사들은 이구동성이다.

국내무적이지만 국제대국에 약해 그의 실력인정에 유보적이었던
사람들의 회의론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평가다.

이창호가 지난 5월29일 대국을 끝으로 50여일의 휴식을 갖고 이 대회에
임했음은 많은것을 시사한다.

조훈현구단도 이창호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머물긴 했지만 녹슬지
않은 솜씨를 보였다.

이 대회직전 유창혁과의 왕위다툼에서 아쉽게 물러나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섭위평과 오다케를 각각 8집반.불계승으로 대파했다.

그의 펀치력은 "이상무"였다.

이번대회로 국내부진에서 상실한 자신감을 어느정도 만회했다.

그를 확실하게 능가하는 기사가 아직은 이창호뿐임을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다.

이번대회 한국의 우승은 8회연속 세계대회를 제패하면서 보인 한국의
비교우위가 일과성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내용면에서도 신구세대가 어우러져 이룬 합작품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