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의 호텔경영자인 죠지 크럼프는 골프장건설의 꿈을 안고
2년에 걸쳐서 영국 스코틀란드의 명코스를 정성껏 둘러 보았다.

그결과 부지를 물색함에 있어서, 크럼프는 우선 골프장이 도회지로
부터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여야 한다는 개념을 부정했다.

오히려 "명화를 감상하기 위해 사람들은 결코 거리에 상관하지 않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법이다"라고 믿었다.

우연한 기회에 국민학교 동탕이 뉴저지주 남부의 조그만 도시인
클레멘트의 교외에, 유사이전부터 바다와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모래언덕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클레멘튼에서 길을 잃었다네. 남서쪽으로 뻗어 있는 이름도 없는
길을 계속해서 달렸었다.

그러자 굉장한 소나무숲이 광활한 해안선에 걸쳐 있더군. 그토록
훌륭한 곳은 본 적이 없네. 특히 주변의 한쪽은 온통 벙커이더군"

공사는 1914년에야 시작되었다.

그가 지형조사를 하는데만도 구두가 7컬레나 닳아 떨어졌다.

자연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 되다는 생각을 가진 클럼프는,
현상이 퐈괴를 초소화하면서도 각자의 기량에 따른 공략의 루투를
어떻게 하면 이루어 낼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주야장철 고민하였다.

그런데 공사가 진전되면서 크럼프는 새로운 고뇌에 빠졌다.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거진 소나무 숲을 벌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나무베는 소리와 스러지는 나무들로 인하여
일어나는 땅꺼지는 진동소리에 근처에는 한마리의 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그루씩 한그루씩 쓰러져 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그는 신음하였다.

"나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말살시키고 있다"

10홀의 부지에서 잘라낸 나무의 그루더기만 헤아려 보아도
2만2,000본에 달했다.

그는 너무도 충격을 받아서 코스창조의 작업을 그만두려고도 하였다.

마침내 1917년이 되어 14홀이 완성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2년동안 아무도 그곳에 들어 가지 못하게 하면서
"자연속에 잠재워 둠으로써 흘은 그 주변과 서서히 융합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후 나머지 4홀을 향해 전심전력을 기울이던 1918년 어느날,
엄청나게 쌓여 있는 도면위에 엎드린채 숨이 끊어진 크럼프가
발견되었다.

그가 죽은 뒤인 1919년에 나머지 4홀이 완성되었는데 그의 뜻대로
코스는 사람의 발자국이 닿지 않은채 조용히 숙성된 뒤인 1922년부터
플레이가 허용되었다.

부동의 세계 최고의 코스인 파인밸리GC는 이처럼 수 많은 사연을
간직한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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