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줄어들던 인천 덕적도, 야구부 창단 후 '활기' 되찾아
덕적고 학생 3배로 늘어…학부모 등 정착하며 섬 인구도 증가
창단 1년만에 전국대회 16강 '기염'…"야구부 더 키우고 섬도 키울 것"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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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에 맞서다]④ 폐교 직전 "플레이볼"…섬마을 살린 외인구단
섬마을 학교에는 아이들이 없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의 태풍은 지금 전국의 학교를 강타하고 있다.

곳곳에서 폐교가 속출하고 있다.

젊은 층의 이탈까지 겹친 농어촌의 학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인천 옹진군 덕적도의 유일한 고등학교인 덕적고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120여 명에 달했던 덕적고의 학생 수는 14명까지 줄었다.

이대로 가면 폐교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지금 덕적고의 학생 수는 38명까지 늘었다.

폐교를 걱정하던 학교의 학생 수가 2년 만에 3배 가까이로 늘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과연 덕적고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지방소멸에 맞서다]④ 폐교 직전 "플레이볼"…섬마을 살린 외인구단
◇ "폐교만은 안 된다"…섬 주민들의 집념
인천 출신의 김학용(72) 전 동산고 야구부 감독은 야구부원들을 이끌고 매년 덕적도로 전지훈련을 왔다.

한적한 섬은 훈련에 집중하기 딱 좋았다.

그런데 그의 귀에 해마다 커져가는 주민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섬 학생 수가 자꾸 줄어든다.

조만간 폐교될 것 같다"는 한숨이었다.

문득 그에게 생각이 떠올랐다.

곧바로 주민들과 머리를 맞댔다.

"주민들이 걱정을 너무 많이 하길래 체육 특성화 학교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던졌죠. 얘기를 계속 나누다가 야구부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로 이어졌죠"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학생 수 14명인 학교에 야구부를 만들 수 있을까.

원정경기 한번 나가기 어려운 섬마을에 야구부가 가능한 일일까.

주민들은 마음을 다져 먹었다.

폐교만은 안 된다는, 섬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어지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학교만은 살려야 한다는 굳센 다짐이었다.

우선 교육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야구부 창단을 위한 서명운동에 섬 주민의 절반에 달하는 800여 명이 기꺼이 참여했다.

당국의 승인만으로는 부족했다.

야구부가 훈련할 시설이 있어야 했다.

주민들은 서포리 종합운동장에 야간 조명을 설치하고 잔디를 깔아 선수들이 훈련장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섬에서 바닷모래를 채취하는 건설업체는 1억원을 흔쾌히 후원했다.

하지만 과연 선수들이 올까? 서해의 외딴섬으로 야구를 하려고 학생들이 올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도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④ 폐교 직전 "플레이볼"…섬마을 살린 외인구단
◇ "야구는 친구이자 꿈"…전국에서 '외인구단' 모이다
전남 무안 출신의 안승한(17) 군은 어릴 적부터 프로야구 구단에서 투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왔다.

중학교 시절 클럽팀에 스카우트돼 활약할 때까지 그 꿈은 무르익는 듯했다.

하지만 중3 겨울 때까지 진학할 고교가 정해지지 않았다.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동계훈련을 함께 한 다른 팀 감독이 안 군에게 "인천 섬에 야구부가 생긴다는데 한 번 가보라"며 솔깃한 제의를 했다.

꿈을 포기할 수 없던 안 군은 오랜 고민 끝에 덕적도행을 결심했다.

연고 없는 섬으로 훌쩍 떠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었다.

동생인 안승영(16) 군도 형을 따라 덕적고로 왔다.

먼 서해 섬의 생활이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훈련에 매진할 수 있어 마냥 좋다고 한다.

승한 군은 "야구는 해도 재밌고, 봐도 재밌고, 그냥 내 옆에 계속 남아있는 친구 같은 존재"라며 "'쟤는 어딜 가도 잘 던지는 선수야'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다짐했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④ 폐교 직전 "플레이볼"…섬마을 살린 외인구단
야구 선수를 지망하는 학생은 많지만, 모두가 고교 야구부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망생에 비해 야구부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국에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는 144곳이지만, 고교 야구부는 94곳에 불과하다.

이처럼 덕적도로 온 선수들은 단지 야구가 좋아서, 고교 진학 후에도 야구선수로 뛰고 싶어서 전국에서 먼 섬까지 찾아온 학생들이다.

덕적고 2학년 금윤호(17) 군도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낯선 덕적도까지 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금 군은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서울과 경기 학교를 여러 곳 옮겨 다녔다.

중학교는 경기도 일산에서 다녔고, 고교 때는 서울로 진학했다가 다시 천안으로 옮겼다.

이후 친구의 권유로 덕적고로 왔다.

이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만으로 전국에서 모인 '외인구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덕적고 야구부는 지난해 황금사자기 고교 야구대회에서 16강에 진출했다.

창단한 지 1년밖에 안 된 신생 야구부로서는 기대 이상의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금 군은 "처음에는 '섬까지 가서 야구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지만, 막상 와보니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며 "하루 24시간 야구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낸 비결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단 팀이 잘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대회 16강 이상 올라가는 것이 목표"라며 "졸업해서는 덕적고 최초의 프로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고3 야구부원 9명 중 7명이 대학에 합격했고, 일부는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④ 폐교 직전 "플레이볼"…섬마을 살린 외인구단
◇ 학부모에서 '주민'으로…섬 인구가 늘어나다
야구부 창단 멤버였던 졸업생 채인식(20) 씨의 부모 이선주(53·여) 씨 부부.
인천 중구에 살던 이들은 홀로 타지에 있는 아들을 챙기기 위해 난생처음 덕적도에 왔다가 섬 생활에 매료됐다.

채씨가 학교를 졸업해 대학 야구부에 진학한 후에도 이씨 부부는 섬을 잊지 못했다.

고심을 거듭하던 이들 부부는 결국 지난해 2월 야구부 훈련장인 서포리 종합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펜션을 매입했다.

이씨는 "서포리가 덕적도의 주요 관광지인 데다, 덕적고 야구부도 외부에 많이 알려져 배낭족과 캠핑족들이 많이 찾는다"며 "아들 덕에 우연히 찾게 된 섬이 너무 좋아 정착까지 하게 됐다"고 했다.

인천에서 화장품 제조업체를 운영해온 이씨는 신사업도 검토하고 있다.

화장품의 주요 식물원료 중 하나인 병풀을 자연환경이 뛰어난 섬에서 재배한 후 육지 공장으로 보내 가공하는 사업이다.

이씨는 "펜션을 매입하고 보니 섬에 놀고 있는 비닐하우스 부지가 많아 화장품 원료를 재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수익성이 좋은 아이템인 만큼 섬 주민들과도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④ 폐교 직전 "플레이볼"…섬마을 살린 외인구단
덕적고 야구부의 창단은 학교는 물론 섬 전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학교 규모가 커지면서 섬에 있던 기존 학생들도 수혜자가 됐다.

지난해 야구부원을 제외한 이 학교 3학년생 7명 모두 원하는 대학에 갔다.

김재화 덕적고 교무부장은 "한 학년이 13명 이상 돼야 1등급이 나오는데, 이전에는 전교생이 한 자릿수라 기껏해야 2등급밖에 받지 못했다"며 "지금은 1, 2학년이 각각 14명이라 1등급도 나오고 성적 따기에도 유리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교생 10여명으로 체육 대회를 한다고 생각해보라"며 "학생 수가 늘어나니 어떤 행사를 해도 활력이 넘치고, 일반 학생들도 야구부 덕분에 학교생활이 한결 재밌어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지방소멸에 맞서다]④ 폐교 직전 "플레이볼"…섬마을 살린 외인구단
야구부 덕분에 덕적도의 인구도 늘고 있다.

야구부 창단 직전인 2021년 9월 1천887명이던 덕적도 인구는 올해 4월 1천916명으로 늘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사람이 빠져나가기만 하는 다른 섬과 비교하면 상당한 성과다.

인근 백령도는 5년 전보다 인구가 600여 명 줄었고, 연평도도 인구가 60여명 줄었다.

서미영 덕적면장은 "학생 수가 늘어난 게 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학부모들도 유입되고, 자연스럽게 섬 주민들의 연령층 또한 젊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프로야구단 포수로 활약했던 장광호(56) 덕적고 야구부 감독은 이제 부원 수를 더 늘리겠다는 야심 찬 목표에 매진하고 있다.

선수 16명으로 창단한 덕적고 야구부는 어느새 29명으로 늘었다.

선수가 50∼60명대에 달하는 육지 야구부 수준의 선수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

장 감독은 "주민들의 단합된 노력으로 야구단 창단을 이뤄낸 것처럼, 야구부 확장에도 모두의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며 "좋은 성적을 내고 선수들의 대학 진학도 성공시켜 섬의 성장을 돕는 야구부가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