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탁직 재고용된 정년퇴직자에게도 갱신기대권이 있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노동력 역시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정년퇴직한 근로자를 ‘촉탁직’이라는 이름으로 재고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직원을 새로 뽑아 가르치는 것보다 별도의 교육 없이 곧바로 업무 투입이 가능한 정년 퇴직자를 재고용하는 것이 효율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년 퇴직자의 재고용은 고령자의 노후 안정에 기여하고 사회적 부양 부담을 경감시켜 준다는 측면에서도 순기능이 있다.

그런데 최근 버스, 택시 등 운수업체를 중심으로 정년도래에 따라 퇴직한 촉탁직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재고용에 관한 갱신기대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하급심 판례 중에는 갱신기대권 혹은 이와 유사한 기대권을 인정한 판례들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대구고등법원 2018나20454 판결이나 서울행정법원 2021구합70943 판결은 취업규칙, 단체협약상 정년 후 촉탁직 재고용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촉탁직을 재고용한 사례와 형평성 등을 근거로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재고용 거부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2023. 5. 11.에도 서울행정법원은 단체협약상 재고용 절차규정과 정년 후 재고용 및 갱신 사례가 존재한다는 점을 이유로 ‘재고용에 대한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보았다(2021구합83956). 위 판례들은 공통적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의 갱신기대권’ 법리를 유추 적용함으로써 ‘정년 퇴직 후 최초로 재고용 여부가 문제된 경우에도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이하 '일부 하급심 판례'). 이는 ‘정년에 도달해 퇴직하게 된 근로자에 대해서 근로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여부는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해당 근로자에게 정년연장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기존의 판례 태도(대법원 2008. 2. 29. 선고 2007다85997 판결)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위와 같은 일부 하급심 판례의 태도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기존의 기간제 근로계약에 대한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 사례들과는 배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부 하급심 판례가 적용한 갱신기대권 법리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대법원은 그간 ‘기간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사정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기간제 근로자에게 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라면,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여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고, 이 경우 기간만료 후의 근로관계는 종전의 기간제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는 소위 ‘갱신기대권’ 법리를 형성하여 왔다(대법원 2011. 4. 14. 선고 2007두1729 판결 등). 이후 대법원은 위와 같은 ‘기간제 근로계약에 관한 갱신기대권’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상 ‘고령자’가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두50563 판결).

여기까지는 기존 ‘기간제 근로계약에 관한 갱신기대권’ 법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법해석으로 큰 무리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하급심 판례의 경우 기간제 근로계약이 존재하는 상황이 아니라 ‘정년 퇴직 후 최초로 촉탁직(계약직) 채용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대해서도 ‘갱신기대권’법리를 유추적용했다는 것이다.

정년(停年)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근로자의 근로계약 의사나 능력과 상관없이 근로계약을 종료하기로 정한 제도’다. 따라서 근로자가 정년에 도달하면 근로계약은 ‘당연 종료’되므로 정년퇴직 후 최초로 이루어지는 재고용은 ‘채용’일 뿐 ‘계약 갱신’이 아니다. 따라서 기간제 근로계약이 존재함을 전제로 일정한 상황 하에 동일한 내용의 기간제 근로계약이 체결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갱신기대권’의 법리가 적용될 수는 없다. 직원의 ‘채용’은 인사영역에서 사용자의 재량이 가장 강하게 인정되어야 하는 영역이며, 정년 퇴직자를 ‘기간제 근로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볼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정년 후 촉탁직 ‘채용’을 ‘기간제 근로계약의 갱신’과 동일한 차원으로 이해한 일부 하급심 판례는 법리 적용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법원이 정년퇴직자의 최초 재고용에 대해 갱신기대권 법리를 무분별하게 확대 적용할 경우 사용자는 정년 퇴직자 재고용 자체를 기피하게 될 것인바, 이는 고령자의 계속고용을 통해 고령자의 노후안정을 꾀함은 물론 사회적 부양부담을 경감하고자 하는 정책방향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일부 하급심 판례는 타당성이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정년 퇴직자는 어떤 경우에 촉탁직 재고용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는 결국 근로조건 형성에 관한 일반법리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년 후 재고용을 요구할 수 있으려면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서 정년 후 재고용을 명확한 의무로 규정하고 있거나 촉탁직 재고용의 관행이 사내 구성원들에 의해 의심할 수 없는 규범적인 사실로 명확히 승인되어 사실상의 제도로 확립된 경우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2. 4. 23. 선고 2000다50701 판결).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