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상철 교수 "G7 대부분 국가, 초진 대면진료 원칙 아냐"
[김길원의 헬스노트] 비대면진료 핵심 '초진'…"외국은 허용이 더 많아"
정부가 다음달 1일부터 시행키로 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둘러싸고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처음으로 의사의 진찰을 받는 '초진'을 비대면으로 허용하는지 여부다.

일단 정부의 계획에는 재진 환자 위주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면서 섬·벽지 환자·65세 이상 등에만 초진을 허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초진을 포함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비대면 진료를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산업계의 반발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이렇게 방침이 정해진 건 비대면 진료 시 초진 환자의 오진 가능성 등을 꾸준히 제기해 온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목소리가 대폭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의료계는 주요 선진국들조차도 비대면 진료에 초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G7 국가 비대면 진료 초진 현황' 자료를 근거로 들고 있다.

이 자료는 G7 가운데 6개 국가가 비대면 진료에 초진을 허용했다는 원격의료산업협의회의 주장에 반박해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자료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법학 전문가의 지적이 제기됐다.

24일 한국원격의료학회(회장 박현애)에 따르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상철 교수는 전날 서울대암연구소서 열린 춘계학술대회에서 "의료정책연구소가 예시한 국가들의 비대면 진료 관련 법률과 정책을 검토한 결과,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면서 "대부분 국가는 비대면 진료를 반대하거나 초진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길원의 헬스노트] 비대면진료 핵심 '초진'…"외국은 허용이 더 많아"
박 교수는 우선 미국의 경우 초진에 대한 비대면 금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의료정책연구소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초진을 허용하고 있는 미국의 연방 공보험 메디케어(Medicare)에 대해 내년 12월 31일에 초진 비대면 진료를 종료한다고 했지만, 이는 초진 종료가 아니라 보장이 되는 비대면진료(telehealth)의 장소적 범위 등이 팬데믹 이전으로 축소되는 등 보장범위의 과거 복귀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초진 비대면 자체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비대면진료의 공보험 보장범위를 초·재진과 관계없이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다.

박 교수는 "미국은 메디케어(Medicare)나 메디케이드(Medicaid) 등의 공보험보다 사보험을 더 많이 이용하는 특성상 많은 주법이 보험사, 플랜 등에게 비대면 진료에 대해 대면 진료와 동일한 보장 내지 급여를 강제하는데, 그 요건으로 초진 때 대면을 강제하는 경우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이 코로나19 이후 '단골 의사 또는 단골 의사의 의뢰서'로 국한해 초진을 허용하고 있다는 의료정책연구소의 분석에 대해서도 후생노동성이 지난 3월 개정한 '온라인 진료의 적절한 실시에 관한 지침'을 들어 반박했다.

박 교수는 "단골 의사는 주치의와 다른데다, 일본에는 단골 의사가 없는 환자도 많아 이들은 아무 의사한테라도 온라인 초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단골 의사 제도를 온라인 진료 기회로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국이 주치의 제도를 통해 비대면 초진을 시행한다는 의료정책연구소의 분석도 사실과 일부 다르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영국은 아직 비대면 진료와 관련한 별도의 법이 없고, 일반 의료 관련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면서 "이로 볼 때 등록된 주치의를 통해 비대면 진료를 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이게 초진 시에 대면을 의미한다고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박 교수는 캐나다와 프랑스, 독일도 초진 대면 원칙이 없다고 밝혔다.

의료정책연구소는 프랑스의 경우 재진이 원칙이지만 주치의의 의뢰서가 있는 경우 초진이 가능하고, 독일은 재진만 허용한다고 분석했다.

[김길원의 헬스노트] 비대면진료 핵심 '초진'…"외국은 허용이 더 많아"
그는 "프랑스의 경우 공중건강법에 2009년부터 비대면 진료를 도입했지만 초진 대면 원칙은 없다"면서 "독일도 의학적으로 정당화되고 필요한 의료적 돌봄이 확보되면 전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이런 주장은 그동안 비대면 진료사업을 추진해 온 산업계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닥터나우 임경호 부대표도 이날 학술대회에서 "G7 국가 대다수는 한국과 달리 초진과 재진이라는 정의조차 없다"면서 "원격 진료를 대면 진료와 동일한 의료 행위로 인정하고, 과도한 규제보다 포지티브 방식의 정책을 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원격의료학회는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 산업계의 입장을 조율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조만간 비대면 진료 권고안 마련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