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가 고발요청권을 적극 활용해 기업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닌 횡령 배임 등의 경제범죄 수사 전선도 넓히고 있다. 공정거래조사부의 수사영역 확장에 기업들은 사법 리스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긴장하는 분위기다.

고발요청권 활용해 선제적 수사

檢, 공정위 고발 없어도 공격적 수사…대기업 '사법리스크' 초비상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이정섭)는 최근 한샘, 현대리바트, 에넥스 등 국내 가구업체 10여 곳의 담합 혐의에 대한 막바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사팀은 이들 기업이 신축 아파트에 빌트인 형태로 들어갈 ‘특판가구’ 납품사를 정하는 과정에서 최소 1조3000억원대 담합을 벌인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해왔다. 지난 2월 수도권 일대 9개 기업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을 시작으로 그 기업의 전·현직 임원들도 줄줄이 소환했다. 최양하 전 한샘 회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았다.

검찰은 공정위의 고발이 없는 상태에서 선제적으로 수사에 뛰어들었다. 조만간 수사 결과를 토대로 공정위에 고발 요청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는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가 고발해야 검찰이 수사와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검찰총장이 고발요청권을 행사할 경우엔 좀 더 능동적인 수사가 가능해진다. 고발 요청이 들어오면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검찰총장 외에도 감사원장, 조달청장,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고발요청권을 가지고 있다.

검찰은 한국타이어그룹 수사에도 고발요청권 행사를 적극 활용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계열사 MKT(한국프리시전웍스)의 타이어 몰드(타이어의 패턴·디자인·로고 등을 구현하는 틀)를 다른 제조업체보다 비싸게 사준 혐의로 한국타이어 법인만 검찰에 고발했는데, 검찰이 지난 1월 조현범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을 고발해달라고 공정위에 요청하면서 수사영역이 대폭 넓어졌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공정거래법 위반 및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을 적용해 조 회장(구속)과 임직원 두 명, 한국타이어 법인을 재판에 넘겼다.

이틀 후인 29일엔 한국타이어가 극동유화의 계열사인 우암건설에 발주 공사를 몰아주고 뒷돈을 챙겼다는 의혹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우암건설 본사와 계열사를 압수수색했다.

공정거래 외 분야로 수사 확대

공정거래조사부가 공정거래 외 분야 기업을 수사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아난티와 삼성생명의 부동산 거래 비리 수사가 대표적이다.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2월 횡령·배임 혐의로 두 회사 사무실과 아난티 대표, 삼성생명 전 부동산사업부 임직원 주거지 등 10여 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수사팀은 아난티가 과거 서울 송파구의 땅과 건물을 삼성생명에 시세보다 싸게 매각하고 그 대가로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삼성생명 임직원들에게 뒷돈을 건넸다고 보고 있다. 아난티는 뒷돈을 건네는 과정에서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조사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달 아난티의 전 최고재무책임자(CFO) 이모씨를 회계장부 허위공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KT도 공정거래조사부의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검찰은 한 시민단체가 “구현모 전 KT 대표가 계열사인 KT텔레캅의 일감을 시설관리업체인 KDFS에 몰아주고, 이사회 장악을 위해 사외이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했다”고 고발한 사건을 지난달 초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했다. 수사팀은 지난달 말 KT 법무실 임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는 등 진상 파악에 시동을 건 상태다.

공정거래조사부가 고발요청권 행사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수사 범위를 넓히면서 기업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 대형로펌 공정거래 담 당 변호사는 “지난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 시행으로 경제범죄가 부패범죄와 함께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중요 범죄가 되면서 더더욱 공정거래조사부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라며 “적잖은 기업이 로펌에 컴플라언스 교육을 요청하는 등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권용훈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