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이놈의 띄어쓰기를 어쩔껴
‘막내아들이이쪽저쪽에서튀어오르는새끼벌레를보고난리법석을떨어모두들숨넘어갈듯이웃었다.’

TV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에서 달인 문제로 나온 띄어쓰기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번 풀어보시라! 출연자가 선택한 답은 ‘막내 아들이 이쪽저쪽에서 튀어오르는 새끼 벌레를 보고 난리법석을 떨어 모두들 숨넘어갈 듯이 웃었다.’이다. 과연 맞았을까. 필자는 틀렸다.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교수도 어렵다고 하는 띄어쓰기. 하물며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은 오죽할까. 그들은 곤혹스럽고, 어려운 것으로 띄어쓰기와 경어법을 들었다. 둘 다 본질적으로 외워야 하는 것이다. 애들한테는 밥, 어른에게는 진지, 오래전은 붙이고 얼마 전은 띄고…. 고통지수가 더 큰 것은 띄어쓰기였다. ‘우리말 겨루기’에서 하도 달인이 탄생하지 않자 방송사는 띄어쓰기 문제의 수준을 한참 낮췄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알다시피 훈민정음은 원래 띄어쓰기가 없었다. 당시 주류 언어인 한문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영향이 크다. 그런데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1446년 9월 정음 반포 이후 430년 이상 띄어쓰기 한 움직임이 없었다.

맞춤법 규정이 부른 혼란

서양인들은 달랐다. 새로 가르치고 배우기가 어려웠다. 영국인 목사 존 로스가 1877년 한국어 교재 <조선어 첫걸음>에서 띄어쓰기를 처음 도입했다. 영어식으로 띄어쓰기 한 것이다. 20년 뒤 한국인이 발간한 독립신문 창간호 사설은 의미심장하다. “언문으로 쓰는 것은 남녀 상하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오, 또 구절을 띄어 쓰는 것은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다”고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 이유를 밝혔다. 세종의 정음 창제 이유, ‘어엿비 녀겨’와 맥을 같이한다. 몇 백년 동안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불편을 참았을 뿐이다. 그렇게 ‘알아보기 쉽도록 한’ 띄어쓰기가 127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한글 사용자의 머리를 쥐나게 하고 있다.

혼란의 주범은 맞춤법이다. 종범은 국립국어원이고. 단어는 띄어쓰고 보조동사는 붙여 쓸 수 있다고 한 규정이 대표적이다. 눈먼돈 검은돈의 차이는? 검은돈만 한 단어, 눈먼 돈은 단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띄어써야 한다. 그럼 이들을 누가 단어로 결정하나. 국립국어원이다. 국어원은 한글 사용자가 제기한 어휘를 대상으로 단어인지 아닌지 심의한다. 눈먼 돈은 국어원의 눈에 들지 못한 어휘인 셈이다. 반면 기어다니다 쳐내려오다 데려다주다 모셔다드리다 등은 보조동사를 붙여 표제어로 올렸다.

단순하고 정연하게 고쳐야

이러니 헷갈리는 게 당연하다. 어휘 변화 사항을 일일이 기억해야 하니 말이다. 인터넷 사전을 띄워 놓고 앞 좌석은 띄고 뒷좌석은 붙이고 가족 간은 띄고 부부간 사흘간은 붙이고 하나하나 확인하며 언어 생활을 해야 할 판이다. 경주불국사에 이르면 기겁할 노릇이다.

세계에서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자랑하는 한글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원. 차라리 띄어쓰기 규정을 모두 없애면 어떤가. 보기 좋게 나름 적당히 띄어쓰자고 하면 너무 파격인가. 글이란 게 소통하고자 쓰는 것이고 편하자고 띄어쓰는 것인데 외려 사람을 옥죄기에 하는 소리다. 규정 자체를 없애고 읽는 사람이 잘못 파악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만 띄어쓰면 문제 없을 성싶다.

하다못해 의미 전환이 일어난 어휘는 한 단어로 붙여쓴다는 원칙만 세워도 검은돈 눈먼 돈은 해결할 수 있다.

결자해지이니 국어원이 풀어야 한다. 의미 단위로 붙여 쓰든지, 같은 조어 형식이면 똑같이 취급하든지 단순하고 정연하게 띄어쓰기를 혁신하라.

아울러 무도한 사이시옷 문제 등 개정한 지 30년이 지난 맞춤법 자체를 손보기 바란다. 국어학자, 교열기자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띄어쓰기를 규정이라는 이름 아래 언어 생활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일 뿐이다.

문제의 정답은 ‘막내아들이 이쪽저쪽에서 튀어 오르는 새끼벌레를 보고 난리 법석을 떨어 모두들 숨넘어갈 듯이 웃었다.’이다.

이 방송 프로그램은 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답안 기준으로 삼았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난리법석을 한 단어로 본다. 그러니 방송사가 제시한 게 ‘절대 정답’은 아닌 셈이다. 고려대 사전은 눈먼돈도 한 단어로 처리했다.

김지홍 기사심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