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소득 이상 증명해야 비자 연장되는 제도는 부당"
섹 알 마문 감독 "이주예술인, 한국문화 풍요롭게 할 것"

"이주예술인이 바라는 것은 돈을 지원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맘껏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입니다.

"
이달 3일 서울 영등포구 아시아미디어컬쳐(AMC) 팩토리 사무실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 섹 알 마문(49) 영화감독은 이주예술인으로서의 삶과 바람을 이야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문화는 다른 하나와 또 다른 하나가 만나서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하며 발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이주예술인들이 궁극적으로 한국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고국에서 대학에 다니다가 1998년 무비자로 한국에 왔다.

가구 공장 등을 전전하며 불법체류(미등록) 외국인으로 살아오던 중 자신을 도와 퇴직금을 받도록 해준 인권단체와 연을 맺으면서 이주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 여성과 오랜 연애 끝에 2003년 결혼해 결혼이민비자를 얻었고, 2009년 귀화했다.

비영리 이주민문화예술단체인 AMC 팩토리에서 함께 연극을 만들던 지인의 권유로 영화 공부를 시작했고, 2014년 '굿바이'를 시작으로 '하루 또 하루', '피난', '꿈, 떠나다', '빠마' 등 다양한 영화를 제작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터뷰] "예술의 가치 돈으로 따지는 게 말이 되나요"
-- 한국에서 이주예술인은 어떤 존재인가.

▲ 취업 비자로 입국해 공장이나 농어촌 등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에서 존재감이 뚜렷하다.

없으면 티가 난다.

한국 사회에 타격을 준다.

최근 인력난을 겪는 조선소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게다가 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사업장 이동도 어느 정도 가능하고, 커뮤니티도 단단해 의지할 수 있다.

이주예술인은 반대다.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술이 사라진다고 해서 현실에 타격을 주진 않으니까 주목과 관심을 못 받는 유령 같은 존재다.

-- 그런데도 이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문화란 다른 하나와 또 다른 하나가 만나서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하며 발전하는 거라 믿는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예술가 간에 교류하면서 (문화가) 다양화된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라 믿는다.

그래서 한국 예술인도 여러 나라로 떠나 배우고 체험하는 것 아니냐. 우리(한국인)끼리만 있으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다.

다양한 국적 출신이 모여 창조적인 축구를 펼친 카타르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처럼, 이주예술인만이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있다.

-- 이주예술인의 삶은 어떤가.

▲ 나는 운이 좋았다.

결혼이민비자를 받고 귀화했으니, 모든 활동에서 제약이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단지 비자 하나로 예술인지, 생산직인지 정해진 일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사람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은 비자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으로 결정돼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결혼하지 못했다면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꿀 수도 없었을 거다.

[인터뷰] "예술의 가치 돈으로 따지는 게 말이 되나요"
-- 예술흥행(E6) 비자 소지자들을 둘러싼 문제점은.
▲ 예술가는 의사나 변호사 등과는 다르다.

대학에 들어가 졸업하고 자격증을 따야 그 일을 할 수 있는 증명이 생기는 게 아니다.

예술가 자격증은 없지 않은가.

무분별하게 예술 비자를 발급해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과거에 어떤 작품에 참여했고, 어떤 예술품을 만들었고, 향후 창작 계획 정도만 증명한다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소속된 에이전시가 있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발급과 연장 모두 에이전시가 좌지우지하니까 부당한 계약을 해도 냉가슴 앓는 이주예술인이 많다.

-- 이주예술인에게 필요한 것은.
▲ 자유로움이다.

작품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위해선 체류 불안정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그러나 비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소득 이상을 꾸준히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예술인 월평균 수입이 100만원대고, 벌이도 불규칙한데 말이 되나.

예술의 가치를 돈에 두고 비자를 주는 건 말이 안 된다.

예술하지 말고 떠나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밖에 기존 체류 외국인 가운데 예술 활동을 희망하는 이에게 예술 비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불법체류 양산을 이유로 비자 발급을 꺼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 이주예술인을 위해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 돈을 지원해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맘껏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다.

난 40살에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꿈이 생겼다.

영화를 통해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수 있구나 싶은 희망이 생겼다.

한편으론 안타까웠다.

나처럼 꿈을 갖고도 펼칠 수 없는 외국인이 많기 때문이다.

여러 제약 탓이다.

이들이 재능과 꿈을 펼칠 수 있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한국 문화도 더욱 풍요롭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들이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