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 /사진=서경덕 교수 제공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 /사진=서경덕 교수 제공
일본도 한국처럼 못 만든다. 중국은 더더욱 못 만든다. 그런데 해외에서 한국 문화가 계속 주목을 받으니까 배알이 꼬이는 것이다.
'한국 문화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최근 중국 네티즌의 '김치 왜곡'·'도둑 시청', 일본의 '역사 왜곡'·'욱일기 사용' 등 한국을 향한 도발, 무시하는 반응은 모두 중국인과 일본인의 '문화적 위기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말로 '열폭'(열등감 폭발)이라는 것이다.

지난 21일 성신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그만큼 한국의 문화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면서 "K콘텐츠의 후속타로 '오프라인'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은 새로운 기회다. 출근길에 외국인들이 가이드를 따라서 이동하는 모습을 봤다. 7시 반이었는데 말이다. 외국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면서 "이제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의 경험을 알리고, 재방문시킬 수 있는 관광 유인물들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

영화 '기생충' 등을 시작으로 한국 콘텐츠는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전세계인이 시청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차트에서 한국 콘텐츠가 1위를 기록하는 것도 이제 더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는 '왜 유독 한국의 콘텐츠가 잘 먹히느냐'는 질문에 "한국은 전 세계인에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인 관심사를 잘 건드린다. 나아가 그 사회적인 이슈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더 글로리'에서는 학교 폭력을, '오징어게임'에서는 일확천금 심리 등을 제대로 다뤘다.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한국인은 트렌드 세터가 돼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후속타다. 바로 '오프라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전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었을 때, 한국 사람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김밥집'을 찾아가는 일이 있지 않았나. 드라마상 김밥집으로 나오는 곳은 김밥이 아니라 일식을 하는 곳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드라마 촬영지라는 이유로 우르르 몰려갔다"며 "바로 그 옆이 수원화성이다. 가장 한국적인 곳이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그렇다면 콘텐츠와 한국 관광지를 연계할 수 있는 하나의 관광 코스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도 그냥 콘텐츠 몇 개를 잘 만들어서 그걸로만 딱 끝낼 게 아니다. K드라마·K팝·K영화 팬들이 한국에 와서 지갑을 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제 조카가 미국에서 유학 중인데, 한국 콘텐츠를 접한 미국인 친구들이 다음 방학 때 한국에 갈 테니 재워줄 수 있냐고 물어봤단다. 우리는 그런 지점들을 공략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영화 '반지의 제왕'을 언급했다. 그는 "영화 몇 편 찍은 후 뉴질랜드가 한해 관광 수입으로만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지 않으냐"면서 "우리도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게 관광 산업 등이 발전하게 되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진다. 한국은 유독 서비스업 발전이 해외에 비해 더디기도 하다. 그는 해외에서 인기를 끈 콘텐츠들이 전국 곳곳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체로 서울에 집중된 외국인 관광 수요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일도 가능해진다고 했다. 지방 분권도 한층 강화할 기회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최근에 경기도 전 세계적으로 안 좋고, 고용 지표들도 악화하지 않았나. 요즘 학생들도 적절한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모로 수지가 맞는 일"이라면서 "정부, 국회, 지자체에서 모두 의기투합해 추진한다면 전국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향후 3년이 이 기회를 살릴 것인지 그저 지나칠 것인지 한국의 명운이 걸릴 정도로 중요한 시기"라면서 "올여름이면 내 조카와 친구들처럼 관광객들이 대거 몰릴 텐데, 이때 좋은 인상을 주면 그게 SNS에 홍보도 되고, 재방문율도 높일 수 있는 유인이 된다"고 내다봤다.

"저작권 침해 발생하면 中에 할 말 해야 한다"

'한국 문화 지킴이'로써 그는 최근 중국 등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도둑 시청'이 늘어나면서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발생하는 현상에 우려를 제기했다. 이미 그런 '도둑 시청'이 어제오늘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윤석열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에 '언어별 저작권 침해정보 수집시스템' 구축을 포함하는 일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해당 시스템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침해가 발생할 경우,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다만 그는 "시스템을 만들어도 특히 중국 같은 나라와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중국 당국에 시정 요청을 하는 것이 어느 정부든지 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이런 침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우리 당국이 중국 당국에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불편하게 지내자는 말이 아니다. 함께 할 건 하되, 서로 지킬 것은 지키자고 말하는 '투 트랙' 전략을 모든 정부가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기업의 이익을 지켜줄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국가대표'"

그는 송혜교, 이영애, 김윤진 등 다양한 연예인 함께 '한국 문화 지킴이' 활동을 했다. 대표적으로 송혜교와 함께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추진한 일이다. 그중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누구 한명만 뽑을 수는 없겠다. 모두들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임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모두 정말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단 '국가 대표' 같았다는 것.

그런 인상을 최근에는 세계 곳곳에 있는 네티즌들한테 느낀다. 서 교수는 "무슨 문제를 목격하면 제보에 그치지 않고, 직접 당국에 연락해서 조치까지 취한 후 '해결 인증샷'을 보내시는 분들이 최근에는 많아지고 있다"면서 "주변에 재능기부를 해주시는 여러 전문가의 도움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고, 우리 대중들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점차 '민간'의 힘이 세지고 있는 시대"라면서 "예를 들어 뉴욕 타임스퀘어에 독도 광고를 정부에서 냈다고 하면 그것은 외교적인 마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민간에서 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면서도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서 교수가 최근 기획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크 투어리즘'(역사적 비극이나 재난의 현장을 방문하는 관광 형태). 그는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와 손을 잡고 지난 삼일절에는 전남 완도에 위치한 소안도를 다녀왔다. 여행사는 기획 취지를 살려 실비만 받고, 그는 가이드로 재능기부를 하는 형식이다. 그는 "소안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대단히 왕성했던 곳이다"라면서 "나중에는 외국인만 데리고 독도에 가는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아이들은 줄어드는데 늘어나는 교육교부금을 쓸 곳이 없어 불필요한 혈세 낭비가 이따금 지적되고 있지 않나. 차라리 그런 돈을 모아 우리 학생들이 피부로 우리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에 쓰는 게 역사의식 고취, 나아가 관광 산업 발전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라고도 덧붙였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