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변호사의 상속비밀노트’는 갈수록 분쟁이 늘고 있는 상속·증여 사례에 대한 법률적 해석을 살펴봅니다. 한국전쟁 후 국내에서 부를 축적한 1세대 자산가와 관련한 상속·증여 건수가 늘면서 이에 따른 상속인들 간의 갈등과 소송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상속·증여 및 자산관리 부문 전문가인 법무법인 트리니티의 김상훈 대표변호사가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사점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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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A씨는 1968년에 B씨와 결혼해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았다. 사업으로 큰돈을 번 A씨와 가족의 삶은 내연녀 C씨의 등장과 함께 급변했다. A씨는 1985년에 가족을 한국에 두고 C씨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B씨는 병을 얻었고, 몇 년 뒤 사망했다. A씨는 한국에서 일군 재산의 대부분을 처분해 당시 약 150억원의 돈을 미국 LA로 가져갔다. 그곳에서 대형 쇼핑센터 건물을 구입한 A씨는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C씨와 사이에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 A씨는 2022년 10월에 사망했는데, 사망하기 전 3000만달러(한화 390억원) 상당의 전 재산을 미국에 있는 아들과 딸에게 증여했다. 이 경우 한국에 있는 자녀들은 A씨가 남긴 재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핵심 쟁점은 A씨의 국적이다. A씨 국적이 한국인지 미국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국제사법에 따르면 상속에 관해 사망 당시 피상속인(A씨)의 본국법에 따르게 돼 있기 때문이다(제77조).
자료=법무법인 트리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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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만약 A씨가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로 사망했다면, 한국의 상속법(민법)이 적용된다. 민법에 따르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자녀들)은 법정상속분의 1/2에 대한 유류분권을 가진다(제1112조). 따라서 한국에 살던 자녀들은 미국 자녀들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 그 금액은 법정상속분 1/5(A의 자녀가 총 5명이므로)의 1/2이기 때문에 한 자녀당 1/10, 즉 약 300만달러(39억원)가 된다.(요소1 참조) 만약 A씨가 C씨와 재혼을 했다면 배우자의 상속분(직계비속의 상속분에 0.5를 가산한다)을 고려해야 하므로 한국에 살던 자녀들의 유류분은 각각 1/13이 된다.(요소2 참조)
자료=법무법인 트리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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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상태에서 사망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미국의 상속법이 적용된다. 그런데 미국에선 기본적으로 자녀들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경우 한국에 있는 자녀들이 미국의 자녀들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없게 된다.(요소3 참조)
자료=법무법인 트리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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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경우의 수도 있다. 이처럼 A씨가 이중국적자인 경우 한국법을 본국법으로 본다(국제사법 제16조). 따라서 이 경우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자녀들이 유류분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의 자녀들이 증여받은 재산이 모두 미국 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집행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미국 법원(이 사건의 경우에는 LA 카운티의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법원에다가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경우 승소하기 어렵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에는 유류분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계적 대응이 필요하다.

먼저 유류분제도가 존재하는 한국 법원에 소를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은 후, 그 판결에 대한 강제집행을 허용해달라는 취지의 집행판결청구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해야 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소송을 해 미국 법원에서 승소한다면, 한국 자녀들이 유류분을 취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의 자녀들은 한국 자녀들에게 유류분만큼의 금액을 지급해야 하며, 지급을 거부할 경우 A씨가 남긴 대형쇼핑센터가 경매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한편, 관련 절차를 거쳐 한국 자녀들이 상속 유류분에 해당하는 돈을 입금받으면, 과세 당국으로부터 상속세를 부과받게 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자녀가 받은 유류분은 상속의 효과로서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법학박사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법학박사 김상훈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