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으로 만난 뿔논병아리…애절한 구애 행위와 짝짓기 눈길
[유형재의 새록새록] 사랑이 싹트는 호수…기다림 끝에 이뤄진 사랑
사랑이 싹트는 호수.
아직 깜깜한 새벽 원정길에 나선 덕에 강릉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권 도심 호수에서 펼쳐진 뿔논병아리의 진한 사랑을 지켜봤다.

동해안의 대표적 석호인 강릉시 경포호에서도 볼 수 있지만, 봄이면 다른 곳에서 전해지는 뿔논병아리의 구애 세리머니에 갈증을 느끼던 차에 용기를 내 원정 출사를 감행했다.

수도권 도심의 한 호수 공원에서 혼인 깃이 화려한 뿔논병아리의 구애 행동을 가깝게 볼 수 있다는 소식에 휴가를 내고 단숨에 3시간여의 새벽길을 달렸다.

주변에 대학과 아파트 등이 있는 도심 호수에는 뿔논병아리의 사랑이 한창이었다.

전체 몸길이가 약 55cm 정도의 크기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논병아리 중 가장 큰 뿔논병아리는 사자처럼 화려하고 매력적인 갈기(깃)를 가졌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사랑이 싹트는 호수…기다림 끝에 이뤄진 사랑
[유형재의 새록새록] 사랑이 싹트는 호수…기다림 끝에 이뤄진 사랑
특히, 특이한 애정 표현이 눈길을 끈다.

그곳 호수는 강릉 경포호와 달리 주변에 둥지를 만들 수 있는 갈대숲이 있어 뿔논병아리를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곳곳에서 사랑스러운 구애 행동이 이뤄지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한 쌍의 뿔논병아리는 갈대숲에 둥지를 계속 만드는 중이었다.

또 다른 한 쌍은 좀 떨어진 곳에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암수가 서로 풀을 물어다 둥지를 보수했다.

호수 멀리까지 산책하듯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다시 둥지를 보수하는 행동을 반복하곤 했다.

그러다 마음을 통한 뿔논병아리는 깃과 갈기를 잔뜩 세우고 서로에게 다가가 잘 보이기 위해 털을 고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나 부리를 맞대며 사랑을 확인하곤 했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사랑이 싹트는 호수…기다림 끝에 이뤄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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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털을 잔뜩 세워 왕관처럼 만들어 상대방에게 자신의 멋진 모습을 어필했다.

다른 개체가 다가와 자신의 짝에게 접근하면 사납게 쫓아내는 것은 물론 가끔은 부리로 물고 발로 상대방을 걷어차는 등 살벌하게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사랑을 지켜내면 다시 사랑을 확인하듯 수초를 물고 와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약속이나 한 듯 암수 모두가 물속에서 수초를 물고 올라와 마주 보고 미어캣이나 펭귄처럼 몸을 잔뜩 세운 채 한참 동안 몸을 맞대고 비비는가 하면 수초를 얼굴에 문지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등 구애 행동을 하며 사랑을 확인했다.

구애 행동의 결정적인 장면이다.

이런 구애 행동은 짝짓기하기 위해 하는 선행 행위이다.

이후 암놈은 둥지에 들어가 몸을 잔뜩 엎드린 채 수놈을 기다리며 짝짓기의 순간이 왔음을 알린다.

둥지를 만들거나 짝짓기하는 모습은 경포호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 더욱 신기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사랑이 싹트는 호수…기다림 끝에 이뤄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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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놈은 둥지 주변을 순회하며 둥지를 보수하는 등 딴청을 피운다.

암놈은 둥지를 나서 다시 수놈과 구애 행위를 반복하는 등 사랑을 확인하고 둥지로 돌아와 또다시 짝짓기의 순간을 기다렸다.

이렇게 서너차례 기다린 끝에 드디어 수놈이 찾아와 진한 사랑이 이뤄졌다.

사랑은 순식간이고 이런 구애 행동과 짝짓기는 하루에도 몇차례 더 이뤄지기도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사랑이 이뤄졌다.

호수 갈대숲 곳곳에서 짝짓기와 구애 행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짝을 찾지 못한 싱글 뿔논병아리는 혼자 둥지를 만들고 쌍을 이룬 다른 개체를 찾아다니며 기회를 엿보지만 쫓겨나기 일쑤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사랑이 싹트는 호수…기다림 끝에 이뤄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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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을 이룬 다정한 뿔논병아리들로 인해 싱글 뿔논병아리의 올해 짝짓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런 하트 춤이나 펭귄 춤을 추는 화려한 구애 세리머니 때문에 뿔논병아리는 '물 위의 춤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운동을 나왔던 한 주민은 "호수 공원에서 운동을 자주 하는데도 뿔논병아리의 생태를 잘 알지 못해 그냥 지나쳤었다"며 "이번에 좀 관심을 갖고 봤더니 사람의 프러포즈보다 훨씬 애절하고 진지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번 출사는 새벽에 집을 나섰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피곤한 원정길이었다.

그러나 이들 뿔논병아리가 알을 낳고 부화에 성공해 육아할 때면 사랑의 결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원정길에 나서야 할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충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유형재의 새록새록] 사랑이 싹트는 호수…기다림 끝에 이뤄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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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