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로 떠안은 ‘사고 주택’을 저소득층에 재임대해 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6개월도 안 돼 세입자에게 퇴거를 통보해 논란이 일고 있다. HUG가 공실 상태인 ‘빌라왕’ 매물을 활용해 경매 전까지 단기 임대로 수익을 내보려 했다가 유지·보수 비용이 예상외로 많이 들자 세입자 방출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다.

계약 연장 안 되니 짐 싸라

8일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T빌라. 세입자 A씨는 빌라왕 이모씨 소유였던 이 빌라에 지난해 10월 HUG를 통해 단기 임대로 들어왔다. A씨가 사는 빌라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70만원. 전세사기 피해 빌라로 관리가 안 돼 집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100만원을 들여 직접 수리했다. 시세보다 20% 정도 저렴해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계약 기간은 3개월이지만 월세 연체 등이 없다면 기간 연장을 통해 1년 이상 살 수 있을 것이란 귀띔도 있었다.

하지만 A씨는 이달 초 별다른 예고도 없이 빌라 관리인으로부터 방을 빼라는 통보를 받았다. 관리인은 “상부(HUG)에서 내린 지침으로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당장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당장 전세금을 구할 수도 없고 몇 달 만에 두 번 이사하는 셈이어서 이사 비용도 수백만원 들 것”이라며 “HUG가 경매에 넘기기 전 빌라 청소와 관리를 위해 세입자를 이용한 것 같다”고 했다.

HUG는 전세사기를 당한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대신 변제해주고 떠안은 빌라 등을 지난해 9월부터 재임대하고 있다. 공실 상태인 빌라를 경매 전까지 임대해 수익을 올리자는 취지다. 건물 관리는 법원이 지정한 법무사, 변호사 등 강제관리인이 한다. 월세 수익은 HUG로 귀속된다. 업계 관계자는 “강제관리인은 대부분 HUG가 정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고 소통도 활발히 한다”고 말했다.

임차인들 “6개월 계약은 무효”

해당 빌라 입주 기준은 따로 없다. 다만 계약 기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세입자 대부분이 저소득층과 노인이다. 일부 물량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임대료는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우 주변 시세의 20%, 일반 단기임대는 시세의 80% 수준이다.

양천구 S빌라에 거주하는 B씨도 A씨와 마찬가지로 퇴거 통보를 받았다. B씨는 “경매 낙찰자가 들어올 때까지 거주 가능하다고 들었지만 갑자기 다음달까지 집을 정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당장 이사 나가기가 부담돼 월세를 올려서라도 더 살고 싶다”고 말했다.

HUG가 단기임대 세입자를 내보내고 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기임대 주택을 관리하는 한 관리인은 “강제관리주택은 대개 유지 보수 비용이 많이 들어 생각보다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다만 공공기관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갑자기 세입자를 내보내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다.

HUG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합의해 단기로 계약했더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0조에 따라 갱신권 청구 시 최소 4년은 거주할 수 있다는 게 법조인들의 해석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세입자와 HUG가 특약을 맺었더라도 세입자의 거주 기간은 보호받아야 한다”며 “일시적 사용을 이유로 단기간 거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6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은 세입자들은 일시적 사용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HUG는 계약 불가를 통보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HUG 관계자는 “강제관리 주택의 단기임대는 법원이 지정한 강제관리인이 계약 업무를 담당한다”며 “HUG는 계약 주체가 아니어서 계약 연장이나 만기에 어떤 권한도 없고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강호/조철오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