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사진 촬영과 SNS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생네컷’은 지난해 중국 진출을 추진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현지 즉석사진 업체가 남녀 얼굴 모양의 회사 로고를 베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생네컷을 중국어로 바꾼 ‘인생사격(人生四格)’이란 상호의 업체는 이미 여러 개가 등록돼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상표권 침해로 중국 진출 전략 자체를 원점에서 다시 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틈타…中 'K상표권 도둑질' 기승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상표권 도용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의 상표권 도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주춤해진 틈을 타 상표권 도용이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름값’이 중요한 프랜차이즈 기업을 중심으로 상표권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인생네컷도 상표권 도용 사실을 확인한 뒤 큰돈을 들여 상표권 침해 소송을 했다. 하지만 중국 법원은 1심에서 인생네컷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인생네컷의 상표권을 인정하기보다는 선(先)등록주의에 따라 미리 상표권을 등록한 해당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엄명룡 특허법인 다해 변리사는 “중국의 경우 악의적인 모방 상표에 대해 기업들이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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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생네컷은 남녀 얼굴 형상화 로고를 중국 시장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값진 경험을 바탕으로 대만 등 다른 국가에 상표권을 우선 등록했다”며 “한글 로고를 앞세워 상반기 중국 진출을 대대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샌드위치 브랜드 ‘에그드랍’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중국 회사들은 에그드랍의 영문 표기인 ‘EGG DROP’ 단어 사이에 가운뎃점을 찍은 ‘EGG·DROP’ 등의 상표를 등록했다. 다행히 에그드랍이 상표권 무단 도용 소송에서 이기긴 했지만 이미 도용 업체가 가맹점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다. 빙수 프랜차이즈 업체 ‘설빙’ 역시 중국의 ‘설빙원소’란 회사와 상표권 무효 소송을 했다. 파리바게뜨는 2017년 발음은 같지만 한자만 달리하는 방식으로 상표권을 모방한 현지 업체로부터 상표권 이용 대가로 1000만위안(약 18억원)을 요구받기도 했다. 5년 동안의 긴 법정 분쟁 끝에 중국 법원은 파리바게뜨의 손을 들어줬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힘들어진 점을 현지 기업들이 악용한다고 분석했다. 어차피 중국 진출을 못하는 상황이니 선호도가 높은 한국 프랜차이즈 업체의 ‘간판’을 무단으로 가져다 써도 된다는 것. 중국 내 상표권 무단 선점 사례는 코로나19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날 특허청에 따르면 2019년 코로나19가 본격화하기 전 중국의 상표권 무단 선점 건수는 1486건이었지만, 2021년엔 2922건으로 1436건(96.6%) 늘었다.

전문가들은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상표에 대한 권리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상표권을 뺏기면 저명상표로 인정받기 힘들다”며 “진출할 국가에 상표권부터 등록하고 해외 사업을 준비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