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성범죄자에 2012년 아내 피살…10년 소송끝 국가 손해배상
"이제 아이들에게 못해 준 소소한 것 해보려 해"
'중곡동 살인' 유족 "국가책임 인정하는 사례 쌓이고 쌓이길"
2012년 8월20일. 그날 아침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박씨의 아내는 언제나 그랬듯 어린 두 자녀를 유치원으로 배웅하러 나갔다.

그 틈을 노려 그의 집에 범인 서진환(당시 43세)이 몰래 침입했다.

서진환은 집으로 돌아온 박씨의 아내를 성폭행하려다 완강히 저항하자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언론은 이 사건을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으로 불렀다.

아내를 비극적으로 보낸 박씨의 삶은 그날부터 송두리째 흔들렸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행복하려고 결혼했고 또 행복하게 내 삶을 살고 있었는데 왜 남에 의해 망가져야 하나'라고 원망했습니다.

사실 2년 전까지도 계속 그런 생각이었어요.

"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를 짓눌렀다.

박씨는 "섬처럼 고립된 곳으로 가고 싶었다"며 "누군가 죽었다는 뉴스도 볼 수 없었고 사람이 죽는 장면이 나오는 잔인한 영화나 드라마도 아예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린 두 자녀가 엄마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가장 힘겨웠다.

박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며 "어느 날은 딸이 찜질방을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다른 애들은 다 하는 걸 못 해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기억했다.

중곡동 살인사건은 1일 법원의 판결로 11년 만에 다시 주목받게 됐다.

사건 이듬해인 2013년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박씨가 일부 승소하면서다.

1·2심에서는 박씨가 패소했지만 지난해 7월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물어 박씨의 손을 비로소 들어줬다.

박씨는 이날 판결 뒤 10년간의 긴 소송을 마친 소감을 묻자 "사실 좋은 마음은 안든다"며 "소송하는 동안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커서 '굳이 이럴 일인가'하는 고민도 많이 했고 이번 소송으로 경찰 대응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들었다"고 답했다.

또 "사실 나라에서 뭘 해줘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며 "평생을 맘속에 품고 살아가는 상처여서 치유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한 뒤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소송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응원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박씨는 "이번 소송이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가 쌓이고 쌓이면 조금만 신경 쓰면 일어나지 않을 '인재'(人災)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가의 책임을 30%만 인정한 법원의 판결에 "매우 아쉽다"며 "국가의 책임이 적어도 60%는 될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그는 이번 판결이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의미를 되새겼다.

특히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면서 "여전히 어디서든 이 같은 사건은 또 발생할 수 있다"며 "그래도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가 계속 쌓이고 쌓이다 보면 (막을 수 있었는데 못 막는 일이) 조금이라도 덜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 유족도 소송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며 "제가 받은 판결이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제 그는 그간 못해본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요.

캠핑하러 가고 싶다고 그랬는데 이번에 가보려 합니다.

소소한 것들을 다시 해보려고요.

"
'중곡동 살인' 유족 "국가책임 인정하는 사례 쌓이고 쌓이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