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하루 107편 2019년 480편 4배 훌쩍…관제업무도 늘어
눈보라 치는 악기상 속에도 비행기 사고 없이 안전운항 책임

[※ 편집자 주 = '공항'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에도 '쉼'과 '재충전'을 위해 누구나 찾고 싶어하는 제주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약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그곳에는 공항 이용객들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해 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비록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제주공항을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이야기와 공항 이야기를 2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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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사람들] ⑪365일 24시간 제주 하늘길 안내 "오늘도 이상무!"
하루 평균 500편 가까이 되는 항공기가 오가는 제주국제공항.
여객 수요가 많을 때는 1분 30초마다 항공기가 뜨거나 내리는 등 전국에서 가장 분주한 공항 중 하나다.

제주공항 안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관제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의 연속이자 숨 막히는 긴장이 이어지는 공항의 중심부다.

365일 24시간 밤낮으로 하늘길을 안내하는 제주공항 관제탑의 모습을 1일 들여다본다.

◇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제주공항 관제탑
칼바람이 몰아치던 지난달 27일 오전 제주국제공항 관제탑.
철저한 보안검색을 거친 뒤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해 68m 높이의 관제탑 꼭대기에 올라서자 유리창 너머로 제주공항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관제탑 안에 들어왔다는 신기함을 느낄 새도 없이 관제탑 안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창밖은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인해 활주로의 비행기가 간신히 보일 정도로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⑪365일 24시간 제주 하늘길 안내 "오늘도 이상무!"
급변풍 특보와 강풍 특보가 발효된 궂은 날씨 탓에 항공기 결항이 이어졌고, 관제탑의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제주공항 인근에 다다른 항공기 조종사들과 교신하는 관제사들의 목소리에는 다소 긴장감이 묻어났다.

항공기 사고의 90% 이상이 이착륙 과정에서 발생하는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고 관제사들은 예정된 항공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유도했다.

'하늘길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관제사들의 역할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제주공항 관제탑 근무 20년 차인 조영직 관제사는 "비행하는 항공기와 공항에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교통흐름을 유도하는 게 관제사의 임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공항 관제탑은 항공기 이착륙 허가와 비행허가를 중계하고 항공기와 장애물 간 충돌이 없도록 안내한다"고 말했다.

10분 안팎의 시간이 흘렀을까.

[제주공항 사람들] ⑪365일 24시간 제주 하늘길 안내 "오늘도 이상무!"
매섭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잦아들면서 활주로 너머로 푸른 바다가 드러났다.

하지만 몇 분 뒤 다시 잿빛으로 변하기를 반복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제주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그대로 느껴졌다.

조 관제사는 "북서계절풍이 불기도 하지만 지형적인 여건으로 인해 제주공항에 급변풍이 자주 발생한다"며 "시·분 단위로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악기상(惡氣象)에는 공항을 계속 운행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김포공항에서 출발할 때 제주 날씨에 문제가 없다가도 50분 뒤 제주공항에 도착할 때면 기상악화로 착륙하지 못하고 회항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포발 항공기 한 대가 착륙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면 제주발 항공기가 결항하게 되고 기상악화가 계속되면 대규모 지연·결항이 속출한다.

이러한 탓에 기상 악화가 우려될 때는 항공기 안전과 회항하는 항공기 등으로 인한 혼란, 승객의 불편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 일시적으로 결항을 결정하기도 한다.

[제주공항 사람들] ⑪365일 24시간 제주 하늘길 안내 "오늘도 이상무!"
◇ 365일 24시간 밤낮으로 하늘길 안내
관제탑 안은 무수히 많은 모니터와 통신 장비 등이 즐비해 있었다.

이름 모를 각종 장비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82.8㎡ 크기의 관제탑 안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행기들의 모습을 감시하는 '공중상황레이더'(PSR/SSR), 활주로에서 이동하는 비행기 정보와 모습을 알려주는 '지상감시레이더'(SMR), 비행기 조종사와의 교신을 돕는 '주파수 통신장비' 등이 관제사들의 눈과 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 이러한 주요 장비들이 오작동하는 비상 상황에서도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비상관제시스템이 3중으로 갖춰져 있다.

레이더·통신 장비 외에 기상 장비도 있다.

공항 활주로에서 발생하는 급변풍을 탐지해 관제사와 조종사에게 전달하는 기상장비인 '저고도돌풍경보장치'(LLWAS)다.

조종사들은 급변풍 정보를 통해 이착륙할 때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돌풍에 대비할 수 있다.

관제탑 정면 기둥 2개에 각각 설치된 길쭉한 모니터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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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관제사가 앉았을 때 기둥 2개가 좌·우측 '주활주로-유도로', '주활주로-보조활주로' 교차지점의 육안 감시를 방해하는 탓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설치된 폐쇄회로(CC)TV다.

지난 2017년 관제사 시야를 방해하는 기둥으로 인해 대형 사고가 날뻔한 아찔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했다.

당시 관제사가 남북으로 난 보조활주로에서 이동하던 해군 초계기를 기둥에 가려 보지 못하고 동서 방향의 주활주로에서 대기하던 민간항공기에 이륙허가를 내렸다.

빠르게 속도를 끌어올리며 민간 항공기가 이륙하려던 찰나 주활주로-보조활주로 교차지점에서 해군 초계기가 있는 것을 민간 항공기 기장이 뒤늦게 발견, 급제동하면서 다행히 대형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공기 타이어가 파손되면서 제주공항 활주로가 1시간가량 폐쇄됐다.

이후 기둥에 가려진 교차로 지점을 볼 수 있도록 CCTV 모니터를 설치했지만, 이는 야간이나 악천후 속에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임시방편일 뿐이다.

제주지방항공청은 이처럼 관제업무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노후한 관제시설과 관제통신장비 등을 확충, 안전한 항공기 관제를 하기 위해 현재 새로운 관제탑을 건설하고 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⑪365일 24시간 제주 하늘길 안내 "오늘도 이상무!"
관제탑은 공교롭게도 약 20년 주기로 새로 지어지고 있다.

제주공항의 첫 관제탑은 지난 1983년 40.9m 높이로 지어진 데 이어 2004년 68m 높이의 현 관제탑이 건설됐다.

이어 2024∼2025년 완공을 목표로 현 관제탑의 서쪽 200m 지점에 75m 높이의 새로운 관제탑이 건설 중이다.

새 관제탑의 최상층 면적이 기존 82.8㎡에서 2배 넘는 205㎡로 늘어나 관제인력과 관제장비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관제탑 건설은 급격하게 늘어난 제주공항 항공기 운항편수와도 무관하지 않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89년부터 보면, 당시 하루 평균 107편(연간 3만9천64편)이던 제주공항 운항편수가 2004년 208.4편(연간 7만6천75편)으로 늘었고, 지난 2019년 480.5편(연간 17만5천366편)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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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운항편수가 줄어들었지만 2022년 464.7편(연간 16만9천624편)의 항공기가 매일 뜨고 내리며 점차 회복단계를 보이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바쁜 공항인 만큼 관제사들의 업무량이 늘었고 자연스럽게 근무하는 관제사의 수도 증가했다.

또 한밤중 인천국제공항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항공기들이 유일하게 갈 수 있는 회항지가 제주국제공항이다.

인천을 제외한 전국 공항 중 제주공항만이 24시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공항 관제탑에는 21명의 관제사가 5개팀 2교대로 밤낮없이 근무하며 하늘길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까다로운 제주공항 관제업무를 훌륭히 수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주지방항공청은 2022년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항행안전종합평가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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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하지만, 알아두면 좋은 하늘길 원리
관제탑과 관제사들의 역할을 들여다보는 이참에 우리나라 전체 항공교통관제시스템을 알아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우선, 하늘에는 나라마다 비행정보구역(FIR, Flight Information Region)이 있다.

항공기가 비행하는 공중의 영역을 구분한 것이다.

대한민국 비행정보구역 안에서 비행하는 모든 국내외 항공기에 대해 우리나라 관제시스템은 국제규약에 따라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항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 비행정보구역 안에는 11개 국제선 항로와 43개 국내선 항로 등 총 54개 항공로가 있다.

이때 항공기 운항을 관리·제어하는 관제 업무를 중심으로 관제구역이 비행단계별로 지역관제, 접근관제, 비행장관제 등 3단계로 나뉜다.

하늘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역관제는 2곳이 담당하는데 우리나라를 크게 동(東)·서(西)로 나눠 동쪽은 대구 지역관제센터(대구 ACC)가, 서쪽은 인천 지역관제센터(인천 ACC)가 각각 담당한다.

이어 공항별로 접근관제를 위한 접근관제소와 비행장관제를 위한 관제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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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공항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운영하는 인천국제공항과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김포·김해·제주 등 14개 지방공항으로 나뉜다.

항공기가 이륙해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과정을 자동차에 비유해서 설명하면 하늘길 운영 원리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명절에 자동차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주차장에서 출발해 지방도로, 고속도로를 거쳐 고향으로 가듯 항공기도 비슷한 원리로 이동한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주차장을 '공항'(비행장관제구역), 지방도로를 '접근관제구역', 고속도로를 '지역관제구역'이라 생각해보자.
항공기는 공항별로 관제탑 관제사의 지시를 받아 순차적으로 이륙한다.

공항 관제탑은 항공기가 이륙 허가를 받아 활주로에서 출발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책임진다.

약 10㎞ 범위의 비행장관제구역을 벗어나면 항공기는 이어 접근관제소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지방도로와 같은 접근관제구역을 지나고 하늘길의 고속도로라 할 수 있는 본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제주공항 사람들] ⑪365일 24시간 제주 하늘길 안내 "오늘도 이상무!"
접근관제소는 출발한 항공기가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톨게이트 앞까지의 관제업무를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하늘길의 고속도로인 지역관제구역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때부터 대구ACC 또는 인천ACC 관제사의 지시를 받는다.

하늘에 차선이 그려진 것도 아니고 항공기는 자동차보다 빠르기 때문에 조종사 마음대로 움직이다가 십중팔구 공중에서 마주 오는 다른 항공기와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관제사는 정해진 항공로에서 항공기마다 고도를 다르게 해 항공기간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도한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쯤 다시 접근관제구역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좌석 등받이를 바로 하고 비행기 창문 덮개를 열어달라는 안내가 나오곤 한다.

접근관제소는 관할 구역으로 들어오는 항공기의 착륙순서를 정해주고, 순서대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공항까지 비행하도록 계속해서 감시한다.

이어 공항 주변 10㎞ 안에 들어서면 공항 관제탑의 지시를 받고 착륙하게 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