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역사·정비창 부지 등 참사 14주기 다크투어
참사현장엔 43층 빌딩…개발계획과 텐트촌 아슬아슬한 공존
'철거민 참사' 상처 품은 용산의 어제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안에 상처들이 보입니다.

"
도시재생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오민정(42)씨는 지난 28일 오전 용산참사 14주기를 맞아 열린 '용산 다크투어'에 참여한 뒤 이렇게 말했다.

오씨는 "홈리스 텐트촌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에 판자촌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용산 지역 시민단체들은 2009년 1월20일 발생한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도시개발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해보자는 취지로 이 투어를 마련했다.

지난해 1월 참사 13주기 때 처음 열린 투어는 작년 한 해에만 30여 차례 열리며 초고층 빌딩에 가려진 용산의 어두운 역사를 환기시켰다.

이날 다크투어에는 한파를 뚫고 시민 15명이 참석했다.

투어 참가자들은 용산 민자역사에서 시작해 홈리스 텐트촌과 철도정비창 부지 등지를 약 2시간 동안 둘러봤다.

용산참사 현장인 옛 남일당 터에는 43층짜리 빌딩이 들어서 있었다.

가이드로 나선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활동가는 용산역사에서 민자역사의 사업 구조를 설명하며 "민자역사는 역(驛)이 가진 공공성과 개발회사의 사적이익이 섞여 있는 곳이다.

용산역은 상업시설이 대부분이고 역무시설은 최저 기준 비율인 10%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역과 전자상가를 잇는 구름다리에서는 노숙인들이 용산역 뒤편 공터에 텐트를 치고 사는 '홈리스 텐트촌'이 내려다보였다.

'철거민 참사' 상처 품은 용산의 어제와 오늘
빈곤사회연대의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노숙인 25명이 2017년 인근 드래곤시티 호텔 개장으로 구름다리에서 내쫓겨 텐트촌으로 내몰렸다.

정비창 부지 사업개발이 본격화하면 여기서도 퇴거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쪽방촌·판자촌·고시원·여인숙 등에 사는 사람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알선하는 복지제도가 있다.

하지만 용산구청은 이곳이 '텐트'고 주소가 없기 때문에 제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며 "서울시에서 홈리스 텐트촌 지도와 텐트 번호, 사는 사람을 매년 파악한 자료가 있는데도 소극적 행정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비창 부지가 내려다보이는 서울 이촌고가교에서 각자 원하는 부지의 미래를 그림으로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공원과 공공임대주택,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이나 잔디에 누워서 책을 보는 풍경 등이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정비창 부지를 초고층 복합업무지구인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철거민 참사' 상처 품은 용산의 어제와 오늘
공공임대주택과 수영장·도서관·도시공원을 그린 이상희(44)씨는 "정비창 부지 넓은 땅을 처음으로 직접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며 "단순히 개발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개발로 인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시민들도 어쩔 수 없이 방치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문서희(29)씨는 "정비창 부지를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시 개발한다는데 강남구 코엑스처럼 소비만 이뤄지는 공간이 되면 아쉬울 것 같다.

많은 시민에게 돌아갈 기회의 땅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유지'를 중심으로 도시계획을 연구한다는 대학원생 문지석(27)씨는 "용산 정비창 부지와 민자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며 "홈리스 텐트촌을 처음으로 봤는데 소극적 행정이 씁쓸하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