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불평등 완화를 내걸어 관심을 모아온 김동연 경기지사의 청년 금융정책이 윤곽을 드러냈다. 1인당 500만원을 10년간 저리로 빌려주고, 저축하면 이자를 더 얹어 주겠다는 방안으로 연말까지 1조원을 풀겠다는 게 골자다. ‘전무후무한 복지 실험’으로 평가받는 이 정책은 공개되자마자 실효성을 놓고 지역사회는 물론 금융권에서도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김동연표 청년대출 ‘시동’

"청년에 500만원 마통"…김동연, 이재명 따라하기?
경기도는 26일 ‘2023년 경기청년 기회사다리금융’ 사업을 함께 추진할 금융회사를 오는 3월 9일까지 공개 모집한다고 밝혔다. 도에 주민등록을 둔 만 25~34세 청년에게 1인당 500만원 규모의 마이너스통장을 뚫어주겠다는 방안이다.

이 통장을 체크카드와 연동하고 계좌 잔액이 0원 이상 ‘플러스(+)’면 특별 우대금리도 지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금리는 아직 미확정으로 대출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가산금리로, 저축 금리는 기준금리 ‘+α’ 형태로 금융회사들로부터 입찰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대출 공급 규모는 1조원으로 지원 대상이 20만 명 정도다. 이 나이대 도내 청년(약 180만 명)의 9분의 1가량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도는 특히 금융 이력이 부족해 금융회사에서 대출이 거절되거나 한도가 작은 ‘신 파일러(thin filer)’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염태영 도 경제부지사는 “금융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전국 최초의 청년금융 정책”이라며 “청년에게 더 많고 고른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는 뜻깊은 사업인 만큼 역량을 갖춘 금융회사가 참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금융사 심사와 전산 개발 등을 거치면 오는 8월께 통장 발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8월부터 20만 명에게 1조원 대출

정작 금리 입찰에 나서야 할 금융권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진하던 청년기본대출과 ‘판박이’인 만큼 참여 유인이 적다는 지적이다. 경기도는 2021년 ‘청년기본금융 조례’를 통과시켰고, 지난해엔 500억원의 경기도기본금융기금을 조성했다. 당시 기회사다리금융과 거의 동일한 대출과 저축 프로그램을 준비했지만, 대선 국면에서 유야무야됐다. 이번 기회사다리금융에도 당시 도가 마련한 500억원의 기금이 투입된다. 금융회사가 대출해주되 연체가 발생하면 대신 갚아주는 방식이다.

당시 금융회사들은 이재명표 청년 기본금융 정책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경기도 청년이라면 무조건 빌려주겠다는 수혜 조건이 신용평가를 기본으로 하는 금융회사에선 ‘배임’ 등 규정 위반 이슈가 있을 수 있고, 부실대출을 도가 갚아주더라도 실시간으로 은행의 건전성 지표가 변하는 문제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다리대출 공고안은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도가 손실 보전금을 월별로 금융회사에 정산해주고, 채권 관리도 일반 신용대출과 동일하게 했다. 평가는 엇갈린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관계자는 “당시엔 ‘저금리 대출, 고금리 예금’이라고 설명하는 등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엔 금리와 추심 등의 항목을 모두 추후 협의 항목으로 넣어 인터넷전문은행 등이 관심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다른 은행의 관계자는 “자칫하면 1인당 500만원짜리 빚 탕감책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대출시장이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은행이 전산 구축 비용과 홍보, 체크카드 관련 운영 방안까지 다 도맡으며 은행 재원으로 대출해주고 저축 이자까지 지급하라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수원=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