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원하는 엄벌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법조 시스템에서 성취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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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수사 및 기소체계를 고려하면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우므로, 경영책임자의 법정형 수준을 산업안전법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사건 수사 역량을 키우는 '현실적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용노부는 26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현황 및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 시행 1주년을 맞이해 열린 이번 토론회는 그간의 중대재해 경과 보고와 함께 개선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지난해 산업현장에서는 전체 644명의 사고사망자가 발생했고, 전년도에 비해 39명의 사망자 수가 감소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사업장만 보면 중대재해 사망자는 지난해 256명으로 2021년 248명보다 8명(3.2%) 증가했다. 중대재해법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특히 중대재해 수사가 어려워지고 장기화되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강검윤 고용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 과장은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수사에 착수한 총 229건의 사건 중 52건(22.7%)의 사건을 처리했다"며 "수사가 장기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 12월 기준 산재사망 사고 송치율이 63.7%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치다.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전형배 강원대 교수는 “법의 원래 의도대로라면 사망사고 발생이후 신속하게 수사가 진행돼 경영책임자가 엄하게 벌해지는 상황이 확인돼야 하는데, 수사와 재판이 모두 느리게 진행되면서 시행 1년이 다 돼가도록 처벌 받는 경영책임자가 없다"고 비판했다.

노동계에 대해서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법정형 수준이 지나치게 높게 설계돼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수사와 재판 현실을 받아들이고 경영책임자의 법정형 수준을 산업안전보건법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인정하되, 안전보건확보의무 위반죄 신설을 제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사 속도를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 교수는 현장 안전보건 감독을 해야할 행정력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현장 조사에만 투입되는 점도 꼬집었다. 필요하다면 고용부가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라고도 주문했다.

전 교수는 "사망사고 발생 시 어느 정도 증명이 이뤄져야 공소가 유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수사의 양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충분하지 않은 감독 인력이 장기 수사에 매몰되면 현장 감독이 소흘해질 수 있으므로, 과감하게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세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성룡 경북대 교수도 "근로감독관들 업무 부담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2024년 중대재해법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문제점을 더욱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김 교수는 “(사망사고 발생 후) 송치까지 평균 약 9개월이 걸린다"며 "기업이 로펌을 통해 수사 대처법을 배우거나, 무조건 혐의를 부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수사 장기화가 불가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산업재해치사상죄는 부작위범인데다 중한 결과발생을 요구하는 결과범이란 점에서 복잡한 범죄 수사영역"이라며 "산업안전보건분야의 전문 지식과 경험이 단순한 인력 보강이나 수사인원 보충으로 즉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고 꼬집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