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의 한 토익 시험장에서 응시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의 한 토익 시험장에서 응시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대표 영어능력 시험으로 자리 잡은 토익(TOEIC)이 ‘점수 인플레이션’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0년간 텝스(TEPS)와 토플(TOEFL) 등 다른 영어시험에선 한국인의 평균 점수가 8~16% 오르는 동안 토익만 22% 올랐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토익 시험이 점수 체계 관리에 실패해 수험자들의 영어 능력을 분별하기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3년간 51점 폭등


24일 영어평가학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한국인의 토익 평균 점수는 990점 만점에 122점 상승했다. 2001년 566점에서 2020년 688점으로 오른 것이다. 특히 2013~2016년에는 3년간 51점 폭등했다.

반면 토익이 아닌 다른 영어 시험은 토익만큼 평균 점수가 오르지 않았다. 텝스는 토익 점수가 21.5% 상승하는 20년 동안 7.8% 오르는 데 그쳤다. 토익과 마찬가지로 만점이 990점인데, 571점에서 616점(뉴텝스 기준 333점)으로 45점 상승했다. 토플은 읽기와 듣기 영역만 따질 때 같은 기간 60점 만점에 38점에서 44점으로 올랐다. 15.7% 상승하는 데 그쳐 토익의 상승 폭에 못 미친다.
[단독] 한국인 토익 122점 상승…'점수 인플레' 관리 실패했나
토익 점수 상승이 한국만의 고유 현상은 아니다. 전세계에서 한국과 함께 토익을 가장 많이 치는 나라인 일본에서도 단기간 평균 점수 폭등이 일어났다. 일본인의 평균점수는 지난 10년간 510점에서 557점으로 47점 올랐는데, 특히 최근 2년 새 31점 급상승했다. 단순히 한국인의 영어 실력이 늘어서 토익 점수가 올랐다고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학계에선 토익만 유독 점수가 오른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토익이 2006, 2016년 두 차례 시험을 개정하면서 990점 만점의 점수 체계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토익 개정 전인 2015년과 개정 후인 2017년의 700점이 똑같은 영어 능력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텝스센터장인 이용원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시험이 개정되면 서로 다른 회차에서 동일한 점수를 받았더라도, 동일한 영어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시험의 난이도, 척도, 채점 방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을 개정하면 가급적 서로 다른 점수 척도를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험을 바꾸면 점수 척도도 바꿔야 한다는 규칙은 평가학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다. 2014년 미국심리학회(APA) 등이 발표한 ‘교육 및 심리검사의 기준’에선 ‘시험에 주요한 변화가 발생할 때 새로운 점수 척도를 마련하거나 이전 시험과 점수를 바로 비교할 수 없음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토플, 텝스는 주요 개정 때마다 점수 척도를 바꿔왔다. 다만 한국의 토익 주관사인 YBM은 “점수 체계가 개편될 정도의 변경이 아니었고, 연구 결과 새로운 시험의 난이도가 기존 시험과 동일했다”고 설명했다.

또 "토익은 영어 실력이 다양한 수험자가 응시하지만, 텝스와 토플은 서울대생이나 해외 유학생이 많이 응시한다"며 "성격이 다른 이 시험들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했다.

날로 발전하는 토익 공략법


둘째로 영어 실력과는 무관하게 수험자들의 ‘토익 요령’이 늘었을 수 있다. 취업용 토익 점수를 만들기 위한 사교육 시장이 크게 발달하면서 수험자들이 토익 공략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 토익 앱 ‘산타’ 운영사 뤼이드는 자사 앱으로 20시간만 공부해도 평균 165점을 올릴 수 있다고 광고한다. 에듀윌 등에서도 '4주 만에 토익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이 교수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이 늘었다고 해도 개별 수험자 점수가 아닌 연간 200만여 명이 치는 대규모 시험의 평균 점수가 단기간에 수십 점 상승하긴 어렵다”며 “만약 실제 영어 실력이 늘었다면 토익뿐 아니라 다른 영어시험 점수도 비슷하게 올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영어 실력이 늘었든, 단순 토익 요령이 늘었든 간에 평균점수가 급상승할정도로 수험자 특성이 변했다면, 이 변화도 반영해 시험의 점수 체계를 재검토 해야 한다"고 했다.

공무원 시험에선 토익만 유리

‘뻥튀기’ 된 토익 점수를 텝스, 토플 등 다른 영어 시험과 비교하면 토익이 훨씬 유리해진다. 인사혁신처는 국가직 5·7급 공무원 임용시험 등에서 영어 과목을 토익, 토플, 텝스 등 다섯 종류의 영어시험으로 대체하고 있다. 2004년 공무원임용시험령에 의해 정해진 지금 제도에 따르면 토익 700점은 뉴텝스 340점으로 환산되지만 이 기준이 토익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1년 한국교육학회 연구는 토익 700점이 뉴텝스 265점에 대응된다고 발표하며 환산 기준에 변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시험에서 토익 점수가 더 유리하다 보니 수험생도 토익에 몰린다. 2017년 인사혁신처 자료에 따르면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의 91.2%는 영어 성적으로 토익 점수를 제출했다. 토익이 영어시험 업계를 얼마나 독점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수험생들도 토익이 '쉬운 시험'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텝스관리위원회가 여론조사 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2020년 500여명의 수험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97.2%의 응답자가 "뉴텝스는 토익보다 난이도가 더 높은 시험'이라고 답했다.

토익은 국가 공무원 시험에 활용되는 시험임에도, 우리나라 정부에서 어떤 관리 감독도 받지 않는다. 국내시험인 텝스와 플렉스(FLEX)는 민간자격 국가공인제도에 따라 3년에 한번씩 교육부와 직업능력연구원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출제자는 누구인지, 시험의 질은 유지되고 있는지, 시험이 개정됐다면 새로 바뀐 점수 척도가 적절한지 등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반면 ETS에서 개발한 외국 시험인 토익은 이런 심사 체계에서 자유로운 상황이다.

인사혁신처는 “토익과 다른 영어 시험 간 환산 기준을 포함해 공무원 시험에 관련된 인증시험과 과목 전반을 정기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재검토 중이라고는 하지만 영어 인증시험 환산다른 과목을 모두 포함해 검토 중이므로 실제 환산 기준이 바뀌려면 수년은 걸릴 전망이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