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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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1노동조합 총연맹이자 노사정 대화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가 고소·고발로 얼룩지면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위원장 후보로 나선 이동호 현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채용 비리와 금품 수수 혐의로 고발되자 무고죄 등 맞고소로 대응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내부 갈등이 선거 이후에도 봉합되지 못할 경우, 한국노총의 노·사·정 사회적 대화 참여와 정부 교섭 과정에도 난항이 예상되면서 정치권도 결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17일 치러지는 한국노총 집행부 선거에는 김만재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위원장(기호 1번), 김동명 현 한국노총 위원장(2번), 이동호 현 한국노총 사무총장(3번)이 출마를 선언해 3파전 양상이다.

8일 한국노총에 따르면 한국노총 일부 간부들이 이 사무총장을 지난 3일 뇌물수수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이 사무총장이 자신의 아들인 이 모씨를 한국노총 장학문화재단에 부당한 방법으로 입사시켰고, 자신이 위원장을 지낸 전국우정노동조합(우정노조) 출신 조합원들을 한국노총에 채용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이유다. 이 모 씨는 지난 2021년 10월부터 재단에 1년 계약직으로 채용된 후 9개월간 근무했다. 고발인들은 이 씨의 입사 과정이 공개 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비정상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우정노조 조합원들을 채용시키는 과정에서 압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이 후보자 캠프는 강력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캠프 관계자는 한국경제와의 통화에서 “제기된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며 “아들 채용 문제는 재단쪽에서 지원서를 접수해 달라고 되레 요청했던 건이고, 조합원 채용 이슈는 이 후보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후보자 캠프 측은 이후 보도자료를 내 “노총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특정 캠프의 치졸한 공작”이라며 “흔들림 없이 한국노총 내 적폐 끝내 뿌리 뽑겠다”고 밝히는 등 수위 높은 발언도 이어갔다. 이는 현 위원장이자 경쟁 후보인 김동명 위원장 측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무총장은 김 위원장과 지난 2020년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러닝메이트를 이뤄 당선됐지만, 모종의 이유로 결별하고 별도로 출마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김 위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후 이 사무총장이 여권과의 관계를 수습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갈등이 불거졌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이 후보자 캠프 측이 고발인들에 대해 즉각 허위 사실, 명예훼손, 무고혐의로 반드시 형사고발 조치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 노총 내부 분위기도 냉기를 넘어선 '살기'가 흐른다는 게 노총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국노총 선거관리위원회가 현 위원장 측에 편파적이라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노총 산하 산별노조인 금융노조가 소식지를 통해 김동명 후보자 공개 지지 선언을 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다. 김만재 후보 측은 “지지선언은 선거규정 위반이므로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자료를 기자단에 배포한 상태다.

한편 최근 정부가 노동개혁을 앞세우며 노조 회계투명성을 요구하고 불법행위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가운데 이런 폭로전이 벌어지자, 노동계 내부에서는 한국노총의 치부를 까발리는 ‘자승자박’ 선거가 됐다며 당혹감이 분출된다.

이번 선거로 불거진 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김동명 후보자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드러났듯 친민주당 성향이자 노사정 대화 불참도 불사하겠다는 대정부 강경파다. 이동호 후보자는 상대적으로 온건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김만재 후보자의 경우 강경파로 분류하는 일각의 평가와 달리 노사정 대화만큼은 반드시 참여해 노동개혁 의제에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 중 누가 대정부 교섭의 키를 잡아도, 갈등이 심화될 경우 내부에서 조직을 흔드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노동계 관계자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는 검찰도 수사를 자제하기 때문에 선거 전에 혐의 사실 확인은 불가능하다”며 “서로를 잘 아는 후보자들이라 후속으로 보복성 고발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