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제시한 비위행위 인정 기준…고도의 개연성 vs 확증편향
영업사원 A가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자택 근처 식당에서 사적인 회식을 하고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조사 결과 정당한 비용 집행인지 의심스러운 수십 건의 법인카드 식대 결제가 실제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A는 모임 참석자로 거래처 담당자들을 지명하면서 이들이 만날 장소로 해당 식당을 선호했을 뿐이라 변명한다. 지명된 담당자 중 대부분은 A에게 위 취지에 맞는 짤막한 확인서를 써주었다.

1차 조사 후 인사팀장이 팀원들에 의견을 구한다.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비위행위 증거가 부족해 징계할 수 없다는 팀원이 2명, △확인서가 A의 요구로 작성되었음이 분명하고 내용이 지나치게 단순한 점, 문제의 식당은 허름하여 거래처 담당자와 회식에 부적절한 점 등에 비추어 A의 변명을 믿을 수 없고 징계할 수 있다는 팀원이 2명이다. 캐스팅보트를 쥔 팀장은, 조사 중 일부 회식의 배경과 참석자에 관해 A가 말을 바꾼 점을 떠올리며, 징계 가능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위 사례는, 각 입장을 지지하는 팀원 수를 기준으로 하면, 확실하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둘 중 하나 고른다면 비위행위가 있다는 정도로 조사팀에 비위행위가 입증된 사안이다. 이러한 상황(편의상 ‘50%+α상황’이라 하자)은 실무상 흔히 나타난다. 비위행위의 직접 증거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징계혐의자가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기 마련이며, 기업은 강제 조사권이 없는 것 등이 배경이다.

인사팀장은 위 사안에서 A의 법인카드 부정사용을 본인 판단대로 사실로 보고 징계해도 될까? 달리 말해 △조사팀이 비위행위가 인정될 가능성이 반대의 가능성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 판단이 합리적 추론에 근거하여 신뢰할 만하고, △그 결과 법원도 조사팀이 가진 정도의 확신을 가질 것이라고 신뢰할 만 하다고 하면 징계 실행의 충분조건이 충족될까?

이와 관련, 유사한 상황을 다룬 대법원 판결을 소개한다(대법원 2016. 11. 24. 선고 2015두54759 판결). 기업 물품을 무단 반출하는 차량을 검문 없이 통과시킨 경비직원을, 미필적 고의, 즉 알면서도 묵인하는 정도의 직무태만을 이유로 해고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안이다.

사안에서 경비직원들에게는 분명 무단 반출을 알면서도 묵인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다. 예컨대, 유리벽 구조상 초소 내부에서도 통과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무단 반출 차량은 대형 덤프트럭으로, 초소 통과 과정에서 50-55 데시빌의 소음을 발생시키고, 초소 앞 방지턱 때문에 서행할 수 밖에 없었다. 무단 반출 차량 앞뒤로 초소를 통과한 다른 정상 차량은 검문을 받고 현황기록부에 기재되었으나, 서로 다른 날, 다른 시각에 수 회에 걸쳐 무단 반출이 이루어지는 동안 무단 반출 차량에 대해서는 한 차례도 검문과 현황기록부 기재가 없었다.

이 경우 경비직원들이 무단반출을 알면서도 묵인하였다는 판단은 나름의 근거가 있고, 일견 유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경비업체가 고의의 직무태만을 이유로 경비직원들 전원을 해고하고, 2심 판결(대전고등법원 2015. 9.24. 선고 2015누10351 판결)이 그 해고가 정당하다고 인정한 것은, 현실에서 경비직원들에게 일어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경비직원들의 무단 반출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입증되었다고 보지 않았다. 대법원은 해고 사실은 '고도의 개연성' 있게 증명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①무단 반출 적발 실패의 횟수가 경비직원 1인당으로는 2-3 차례인 점, ②초소에 차단기가 설치되지 않아 서행 통과를 하더라도 짧은 시간에 지나갈 수 있는 점, ③경비직원들이 무단 반출을 시도한 자와 공모를 한 정황이 없는 점 등을 들어, 미필적 고의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없으므로 해고는 무효라고 한 것이다.

위 대법원이 2심 판결을 반박하기 위해 든 근거를 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우선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2심 판결은 경비직원들과 무단 반출자 사이 공모 정황이 없는 점 등 경비직원에 유리한 사실을 진지하게 반박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없다. 미리 직관적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사실만 편의적으로 근거로 채택한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그러나 더 유의할 대목은 대법원이 징계사실 인정을 위해 채택한 증명도 기준인 '고도의 개연성'이다. 2심 판결이 지적한 초소 구조 등은 경비직원들이 무단 반출을 알면서도 묵인했을 가능성을 높이는 정황은 맞다. 그러나 '고도의 개연성'은 상당히 많은 민사소송법 학자들이 십중팔구(十中八九)의 확률, 즉 80~90%의 정확도라고 수치화하여 설명한다. 그렇다면 대법원 판결은, 조금 단순화하면, 경비직원의 고의 무단 반출 가능성은 50% +α상황은 될 수 있겠지만, 확증편향 탓으로 고려하지 않은 반대 근거를 계산에 넣는다면 십중팔구의 확신에 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 아닐까?

사례로 돌아간다. 앞서 '고도의 개연성'에 관한 논의를 고려할 때, 인사팀장은 지금 정도의 확신으로는 A에 대한 징계를 유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대신 업무 감독 및 법인카드 통제 강화 등 다른 인사조치를 실행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단, 명심할 점이 있다. 위와 같은 판단 전에 '고도의 개연성' 기준 충족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여지가 없는지 반드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사팀장은 △거래처 담당자를 전수 대면조사하는 방안, △사내 비리근절 캠페인을 통해 추가 제보를 받는 방안, △A의 핸드폰이나 자동차 블랙박스에 저장된 전자기록 포렌직을 하는 방안 등 아직 실행 못한 조사 방법을 찾아 시도해 보아야 한다.

조사 담당자에게 '고도의 개연성' 부족은 조사를 멈추라는 경고가 아니다. 조사 강도와 증거의 질을 더 높이라는 격려다. 조사 담당자는 50%+α상황에 불과함에도 징계를 단행하는 무모함을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시도할 방법이 남았는데 포기하는 무력함은 기업인사의 공정성 달성의 관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다. 비위행위 조사에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