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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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의 A 영어학원은 최근 원어민 강좌를 하루 12개에서 절반으로 줄였다. 수개월째 구인 광고를 내고 있지만 급여가 적다는 이유로 원어민 강사가 오길 꺼려서다. 김모 대표는 9일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어민 강사가 체감하는 월급이 20% 정도 줄면서 구인난이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로 잠시 온기가 돌았던 외국인 고용시장에 다시 찬바람이 불고 있다. 고환율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외국인 입장에선 임금이 급격히 줄어든 영향이다. 특히 한국 대신 다른 나라로 일자리를 쉽게 옮길 수 있는 영어강사, 정보기술(IT) 등의 분야에서 인력난이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고환율 지속에 달러 임금 ‘뚝’

환율 상승의 직격탄을 맞은 분야는 영어학원 시장이다. 영어 원어민 강사의 월급이 최소 10% 이상 줄면서 그동안 인기 취업국가였던 한국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처음 받는 월급은 보통 220만원(숙식 및 항공권 제공)이다. 최근 1300원을 오르내린 이달 원·달러 환율을 기준으로 강사들의 월급은 1676~1693달러다. 1년 전 같은 달(1844~1872달러), 2년 전(1985~2030달러)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외국인 강사·개발자 채용 '하늘의 별따기'
외국인 강사와 교수를 연결해주는 에이스커리어 컨설팅의 그레이스 김 대표는 “한국에서 일하길 희망하는 영상 면접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심했던 작년에 비해서도 30% 수준이나 적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개발자 채용이 활발한 IT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소셜미팅 앱을 운영하는 국내 대형 IT 업체 B사는 최근 외국인 개발자 이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달러로 월급을 주는 B사는 환율 인상으로 어쩔 수 없이 임금을 대폭 내리고 있다. 지난 9월 원화 기준 임금이 동결되면서 인당 평균 월급여가 6000달러 수준에서 5300달러 수준으로 급락했다. B사 관계자는 “IT업계 불황도 겹치면서 달러 환율에 맞게 월급을 올려주기가 힘들다”며 “외국인 개발자는 어느 국가든 이직이 수월해 다들 이직을 준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IT 개발자가 국내 취업을 위해 받는 E-7 비자 입국자 수도 대폭 감소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E-7 비자 입국자 수는 코로나19 방역조치가 완화된 지난 8월 2555명에서 10월 1916명으로 줄었다. 외국인 회화 강사들이 받고 있는 E-2 비자 입국자 역시 8월 3039명으로 급증했다가 9월 773명, 10월 623명으로 줄어들었다. 외국인 대학 교수 취업 비자 E-1 입국자 수도 9월 이후 매월 감소하고 있다.

◆“장기화 시 전 직종으로 확대될 수도”

전문가들은 공급의 임금 탄력성이 높은 직종부터 환율발 고용 공급 위축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의 임금 탄력성은 임금이 줄어들면 근로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감소하는지의 정도를 나타낸다. 이직이 수월한 직종일수록 임금 탄력성은 높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기술을 보유한 시장일수록 근로자들이 이직할 수 있는 대안은 많다”며 “IT 개발자, 영어 교수·강사 등은 다른 곳으로 쉽게 갈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이 분야 고용시장을 중심으로 구인난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안이 마땅치 않은 단순노무 근로 시장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았다. 비전문 취업비자인 E-9 입국자는 5월 9692명에서 8월 1만7159명으로 늘었다가 10월 1만5627명으로 소폭 줄었다. 하지만 이들의 임금 탄력성이 낮을 뿐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이 분야 입국자 수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구민기/장강호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