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기사들도 업무개시명령을 기다린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시멘트 분야에서 철강·석유화학 업종으로 확대된 8일 노동계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분위기를 전했다. 화물연대 파업 장기화로 손실이 불어나면서 운전기사들이 속속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다. 복귀하지 않은 기사들도 운송 개시 명분으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기다렸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업무개시명령 위반 시 취해질 사법조치로 인한 화물연대 조합원의 부담이 파업 집행부가 예상한 것보다 크다는 이유가 깔려 있다. 여론의 압박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떠밀리듯 운송 거부에 참여한 조합원의 사기 저하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화물연대 조합원 사이에서는 민주노총에 대한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사태 초기에 “연대 파업을 통해 힘을 싣겠다”고 했지만 대부분 규모가 작은 사업장의 하루 단위 파업에 그쳤기 때문이다. 서울지하철 등 공공운수노조 관련 단체들이 대부분 파업을 철회한 가운데 기대를 모았던 금속노조 산하 제철3사 노조 역시 임금·단체협상 타결로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이에 화물연대 지도부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비조합원 위주로 야간 운송만 하던 철강 분야에서 최근 주간 운송이 재개됐다. 화물연대가 목표로 한 ‘물류 봉쇄’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화물연대가 공식적으로 운송거부를 종료할 명분이 없어 파업이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노동계 일각에서도 이번주 초부터 “정부가 백기투항을 강요하고 있는 만큼, 극단적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노동계에서 먼저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여당의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받아들인 것은 이 같은 논의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노동계가 마지막까지 민주당의 안전운임제 확대 관련 법안 처리 강행에 기대를 걸었던 상황에서 민주당의 입장 선회는 화물연대가 파업을 접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결정이 화물연대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번주 화물연대 측이 당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들과 접촉하며 의견을 나눠왔다”고 전했다.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큰 파업이 있을 때마다 민주당은 사실상 외면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노조가 먼저 타협안을 내놓도록 요구했다”며 “십수년 이어져온 관행으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노경목/곽용희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