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올해 2월 사고 대책 제안…주민 반대 등으로 무산
'청담동 초등생 스쿨존 사고' 막을 기회 2번이나 있었다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학생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사건을 예방할 기회가 최소 2번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학교 3학년생인 A(9)군은 이달 2일 오후 5시께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학교 후문으로 나온 뒤 만취 상태로 운전한 30대 남성의 차에 치여 숨졌다.

A군이 사고를 당한 길은 폭이 4∼5m로 좁고 가파른 데다 보도가 없는 '보차 혼용도로'였다.

학교 옆이어서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됐지만 보도가 구분되지 않은 탓에 교통사고 위험이 컸다.

이 길의 위험성은 3년 전 이미 지적됐다.

7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11월 도로교통공단 서울특별시지부와 합동으로 '서울시교육청 관할 교통안전시설 점검'을 했다.

대상이 된 초등학교 20곳에는 언북초교도 포함됐다.

점검 보고서는 "언북초교 후문은 동서 방면으로 차량이 많이 통행하고, 급경사로 이뤄져 보차(보행자-차 충돌) 사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차량 감속을 위해 '고원식 교차로'(높게 포장된 교차로)나 '사괴석 포장'(노면을 울퉁불퉁하게 돌로 포장하는 방법) 도입, 일방통행 운영 등 사고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청담동 초등생 스쿨존 사고' 막을 기회 2번이나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 1월 이 같은 내용을 강남경찰서에 통보했고 경찰은 강남구청에 일방통행 적용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해달라고 요청했다.

사고를 막을 수 있을 첫 번째 기회였다.

구청은 그해 3월 주민 50명 중 48명이 반대했다는 의견 수렴 결과를 경찰에 알렸다.

논의 취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없이 답변을 희망하는 주민만 의견을 제출하게 해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조사였다.

그러나 이후 일방통행 지정 문제는 다시 논의되지 않았다.

이 길은 비좁아 보도를 따로 만들려면 먼저 경찰이 일방통행으로 지정해 먼저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양방향을 유지하고 보도를 만들면 더 좁아진 길에서 차량이 얽히게 되는 탓이다.

구청은 학부모 요구대로 보도 신설을 고려했지만, 그 전제 조건인 일방통행 지정이 주민의 반대 여론을 근거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보고서가 제안한 고원식 교차로나 사괴석 포장도 이뤄지지 않았다.

두 번째 기회는 올해 2월이었다.

언북초교는 당시 수립된 '2022 서울시 어린이보호구역 종합관리대책' 대상으로도 선정됐다.

이 대책은 현장 여건에 따른 맞춤식 보행친화 도로교통 환경 조성을 목표로 내걸고, 폭 8m 이하 도로에는 '심플한 디자인과 스템프 등 요철이 있는' 포장 보행로 조성을 추진한다고 밝혔으나 언북초교 앞에는 이 같은 보도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구청의 대책은 학교 앞 제한속도를 시속 30㎞에서 20㎞로 낮추는 데 그쳤다.

서울시교육청, 구청, 경찰 모두 사고 위험성이 구체적으로 예견됐는데도 3년간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일방통행 지정은 경찰 소관이고 보도 신설은 구청 소관이어서 문제의 도로처럼 폭이 좁은 곳은 두 조치가 동시에 이뤄져야 해 두 기관이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데도 허점을 보였다.

경찰이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뺑소니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는 적용하지 않은 것도 유족과 학부모의 공분을 사고 있다.

언북초교 학부모들은 피의자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는 탄원서를 모아 7일 오후 강남경찰서에 전달했다.

학부모와 주민 2천92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또 강남구청 청원 사이트에도 전날 학교 앞 안전 대책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이날 오후 5시 기준으로 1천730명이 동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