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등 정유사 앞 몰려가
건물 진입 시도하며 경호원 위협
국회·국토부 등 전국 30여곳 시위
출근시간 차도 점거…교통 마비
상인들 "소음 때문에 장사 망쳐"
민노총, 14일 2차 총파업 예고
건설노조 이어 동조파업 확산
택배노조도 12일부터 동참키로
경찰, 건설현장 불법 특별단속
“시위대가 가게 문 앞을 막고 있어 매출이 반토막 났습니다. 남의 생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건지 화가 나네요.”(서울 공평동 칼국수집 사장 A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파업(집단 운송거부) 14일째인 7일부터 대규모 도심 집회에 나섰다. 상당수 조합원이 운송에 복귀하는 등 파업 동력이 약화하자 게릴라식 도심 선전전으로 파업의 불씨를 이어가려는 의도다.
화물연대는 집회 장소를 벗어나 타격 대상인 기업 본사 진입을 시도하는가 하면, 주요 도로를 차량으로 점거해 일대 교통이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집회 장소 주변 상인과 시민들이 큰 피해와 불편을 호소하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당분간 도심 집회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 화물기사와 악수하는 원희룡 > 화물연대 파업 14일째인 7일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찾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화물차 운전기사와 악수하고 있다. 원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포항제철소 등 주요 산업현장을 방문해 화물차 운행 상황을 점검했다. 연합뉴스
정유사 빌딩 무력 진입 시도
화물연대는 이날 GS칼텍스 본사와 SK에너지 본사, 현대오일뱅크 서울사무소 등 도심에 있는 정유사 앞에서 수백 명 단위로 기습 집회를 열었다. 국회의사당 앞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등 전국 주요 지역 30여 곳에서도 게릴라식 시위를 했다.
시민 피해도 잇따랐다. 화물연대 조합원 수백 명이 차도를 점거한 서울 논현로 GS칼텍스 본사 인근은 교통이 마비됐다. 5m 너비 인도를 조합원들이 4m 정도 차지해 시민들은 통행에 불편을 겪었다. 남대문로 현대오일뱅크 서울사무소에선 조합원들이 정해진 집회 장소를 넘어 본사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 조합원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야기해 미안하긴 하지만 우리에겐 생존권이 달려 있어 파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집회 장소 옆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가게 문 앞을 시위대가 완전히 막아 놓고도 미안하다는 얘기조차 없다”며 “애꿎은 사람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수본 “200일간 불법 특별단속”
민주노총은 꺼져가는 파업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화물연대 이외의 산별 노조 파업을 부추기고 있다.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부가 8일부터 레미콘과 펌프차 기사를 중심으로 동조 파업을 시작한다. 이 지역 타설 근로자는 지난 5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 지역 건설노조 조합원은 5000명 수준으로 파업이 강행되면 지역 산업계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택배노조 역시 오는 12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14일엔 민주노총 2차 총파업이 예고돼 있다. 이로 인해 고강도 동투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은 민주노총 파업에 엄정 대응할 방침임을 재확인했다. 불법행위가 여러 차례 적발된 건설노조에 대해선 조사에 나섰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날 건설노조 동조 파업과 관련해 건설 현장 불법행위를 중심으로 8일부터 내년 6월 25일까지 200일간 특별단속을 벌인다고 밝혔다. 단속 대상은 △업무방해·폭력 행위 △불법 집회·시위 △신고자 보복행위 △조직적 폭력·협박을 통한 금품 갈취 등이다. 경찰은 한일시멘트와 성신양회 집회 현장에 800여 명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강원지역 시멘트 화물차 기사 한 명을 경찰에 고발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토부는 “미복귀자 한 명은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고 있다”며 “관계기관에 고발 및 자격정지 30일 행정처분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업무개시명령에 1차 불응하면 자격 정지 30일, 2차 불응하면 자격 취소 처분이 내려진다. 이에 더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다.
“경기가 불확실합니다. 모든 산업계가 투자를 놓고 ‘신중 모드’로 돌아섰습니다.”(허세홍 GS칼텍스 사장)“모든 기업이 내년 투자 규모를 조정할 겁니다. 우리도 꼭 필요하지 않은 투자는 조정하겠습니다.”(이상균 현대중공업 사장)국내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내년 투자 계획을 보수적으로 짜는 건 물론 계획을 아예 백지화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한파’ 속에 내년 경기가 침체 국면을 이어갈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IT 설비투자 꽁꽁7일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시설투자금 합계는 55조원으로, 올해(65조9000억원)보다 16.6% 줄어들 전망이다. 이 같은 전망치대로라면 내년 두 회사의 설비투자는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42조8000억원) 후 가장 작은 규모로 쪼그라든다. 삼성전자는 내년에도 올해 수준의 투자를 유지할 계획이지만, SK하이닉스는 올해의 절반 수준으로 삭감하기로 결정했다.연간 수십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업계는 물론 다른 제조업체들도 속속 투자 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대한유화는 지난달 24일 3000억원 규모의 플라스틱 스티렌모노머(SM) 설비투자를 무기한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현대오일뱅크와 한화솔루션도 각각 3600억원 규모 정제설비 투자와 1600억원 규모 질산유도품 설비투자를 철회했다.한국은행 조사국은 내년 정보기술(IT) 부문과 비(非)IT 부문의 설비투자가 올해보다 각각 13.2%, 0.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규환 한은 조사국 과장은 “반도체업체는 시황 악화에 따라 투자를 줄이고 있고, 디스플레이업체도 패널 가격 하락으로 투자 여건이 나빠졌다”며 “석유화학·철강업체도 전방산업 수요가 움츠러들면서 설비투자 계획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전했다. 180兆 ‘재고 폭탄’에 움츠러든 기업기업들이 내년 투자를 줄이는 것은 우선 넘치는 재고 영향이 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화학 등 시가총액 상위 30개 주요 상장사(금융회사 등 제외)의 재고자산은 지난 3분기 말 181조6222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보다 62조7092억원(52.7%) 불어난 규모로 사상 최대다.가계 씀씀이가 줄면서 재고가 창고에 쌓여가는 상황이다. 재고가 늘면 제조업체들은 가동률을 낮추고 중장기적으론 설비투자를 줄인다. 10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2.4%로 전월보다 2.7%포인트 하락했다. 2020년 8월(70.4%) 후 최저 수준이다.치솟는 금리도 석유화학·철강업체 투자를 옥죄고 있다. 이날 회사채 무보증 3년물(AA-급) 금리는 전날보다 0.024%포인트 오른 연 5.411%에 마감했다. 지난 1월 3일(연 2.46%)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급등했다. 삼성중공업 두산퓨얼셀 같은 대기업도 최근 연 7~8%대 금리로 회사채를 찍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연초 연 3~4%대 금리로 빌린 걸 감안하면 이자비용이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산업은행에 따르면 철강(30%) 정유(28.2%) 조선(25.8%) 등 제조업체들은 2018~2022년 설비투자금의 25~30%를 차입금으로 마련했다. 치솟는 금리가 이들 업종을 중심으로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부진한 수출도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통상 기업들은 수출 전망 등을 바탕으로 설비투자 계획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는 내년 한국의 수출이 4%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수출은 1105억달러(약 144조원)로 올해보다 15%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탓이다.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는 내년 D램 평균 가격이 올해보다 30.6%가량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부산·울산·경남지역 대형 건설 현장의 골조공사가 사실상 중단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 소속 건설 인부와 레미콘 믹서트럭, 콘크리트펌프카, 굴착기 등 건설기계 차주들이 화물연대 동조 파업에 나서면서 자재는 물론 인력 공급까지 끊긴 탓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본거지인 울산과 부산,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건설 현장을 마비시키는 강경 투쟁을 펼쳐 꺼져가는 파업 불씨를 되살리려는 의도”라고 했다.7일 부산시에 따르면 지역 공사 현장 335곳 중 32.2%인 108곳이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동조 파업으로 레미콘 공급이 끊겼다. 이들 건설 현장에선 작업이 전부 혹은 일부 중단됐다. 울산시도 대형 공사 현장 110곳 가운데 32.7%인 36곳에 레미콘 공급이 안 돼 공정에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경상남도에 따르면 이날 도내 77개 건설 현장에 레미콘 공급이 끊겼다.경상남도 관계자는 “도내 시멘트 출하량은 평소의 40%, 철강은 50%에 불과하다”며 “8일부터 부산·울산·경남지역 건설기계 차주들의 작업 거부가 예정돼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지난달 24일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이 지역 건설 현장엔 시멘트 공급이 끊겼다. 최근 들어 시멘트 공급이 조금씩 풀리는 모습을 보이자 타설공들이 지난 5일 동조 파업에 들어가 다시 골조공사가 중단됐다. 여기에 철근공 배관공 미장공 등 민주노총 소속 건설인부와 건설기계 차주들도 8일부터 무기한 작업 거부를 선언하면서 피해가 더 확산하는 추세다.레미콘업계는 매출 감소에 따른 자금난으로 상당수 업체가 도산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 레미콘업계의 하루 매출 손실만 300억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레미콘업계 관계자는 “레미콘 타설을 비롯한 현장 작업을 할 수 없도록 민주노총이 조직을 동원해 2중, 3중으로 봉쇄했다”며 “현장 기사들이 일하고 싶어도 민주노총 집행부에 찍힐까 봐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건설업계는 레미콘 타설 중단이 장기화하면서 공기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입주 지연 등의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업장별로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인원을 반드시 몇 명 채용해야 한다는 ‘나눠 먹기’식 고용 비율이 존재한다”며 “대체인력을 투입하면 이 ‘암묵적인 룰’이 깨져 보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무 대응도 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화물연대가 파업에 불참한 조합원과 비조합원에게 “응징하겠다”며 협박한 의혹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이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정부도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시멘트 운송기사를 상대로 첫 행정 조치에 나서는 등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7일 화물연대 포항지역본부 사무실과 천막 농성장을 압수수색했다. 경찰관 40여 명이 사무실과 천막 농성장 등에 들어가 총파업 기간에 화물연대 조합원이 운송사 관계자에게 협박 문자를 보낸 증거 확보작업을 벌였다.화물연대 관계자는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 시멘트 운송차주 등에게 “파업에 동참하지 않으면 응징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범죄 혐의를 입증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업무 복귀자와 비조합원 등에 대한 보복 범죄는 주동자뿐만 아니라 그 배후까지 철저히 수사해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한 운송기사에 대한 제재도 시작됐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미복귀자 한 명이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돼 경찰에 고발하고 지방자치단체에 행정처분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정부가 시멘트 부문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이후 명령 불응과 관련한 첫 제재 사례다. 운송업체가 업무개시명령에 1차 불응하면 위반 차량 운행정지 30일, 2차 불응하면 허가 취소 조치가 내려진다.화물연대 총파업의 직접적 피해를 본 건설업계는 줄소송을 예고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화물연대의 시멘트 집단 운송거부로 발생한 건설 현장 피해와 관련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추진하기로 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화물연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포항=하인식/김은정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