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시멘트 부문 업무개시명령 발동 이후 화물연대의 파업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시멘트 화물기사의 행정 처분을 예고한 가운데 총파업이 11일째로 접어들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복귀하는 비노조원이 늘어 시멘트 출하량 등이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어서다.
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일 전국 12개 항만 컨테이너 반출입량(전일 오후 5시~당일 오전 10시 기준)은 3만241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로 총파업 이전 평상시 대비 82%를 기록했다. 파업 나흘째인 지난달 27일에는 반출입량이 6208TEU(평상시 대비 17%)로 떨어졌었다. 정부가 시멘트 부문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지난달 29일 이후 반출입량 회복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국내에서 반출입량이 가장 많은 부산항은 평상시 대비 97%까지 회복된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날 시멘트 출하량은 8만4000t으로,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지난달 29일(2만1000t)의 네 배로 증가했다. 평소 토요일 운송량(10만5000t)의 80% 수준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관련 33개 운송업체에 현장에서 업무개시명령서를 교부했다”며 “이 중 29개 운송업체는 운송을 재개했거나 재개한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소지가 확보된 운송기사에게 문서를 우편 송달한 데 이어 주소 불명 운송기사에겐 문자메시지로 송달했는데 175명이 운송을 재개했거나 재개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5일부터 업무개시명령서를 받은 시멘트 부문 운송업체와 운송기사의 업무 복귀에 대한 현장 조사에 들어간다. 업무에 복귀하지 않았으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해 행정 처분을 요청하고, 경찰에 고발 조치해 형사 처벌할 방침이다. 업무개시명령서를 받으면 다음날 24시까지 복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하면 1차 운행정지(30일), 2차 면허취소의 행정 조치가 취해진다.
정유 분야는 탱크로리(유조차)의 운송 거부로 재고가 품절된 주유소가 수도권뿐만 아니라 충남 강원 충북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날 기준 전국의 품절 주유소는 88곳에 달했다.
일각에선 총파업을 선언했던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과 전국철도노조가 연이어 파업을 철회하면서 화물연대의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연이은 파업 이탈에다 총파업 장기화에 따른 경제·산업 피해 규모가 급증하면서 호응도와 지지도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집단 운송거부가 11일째 이어지며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자 정부가 다시 한번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 업무개시명령에 불복하면 영업정지 처분에 더해 1년간 유가보조금을 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른 화물차의 정상 운송을 방해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면 일괄 사법처리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화물연대 요구를 수용해 안전운임제 확대를 국회에서 밀어붙인다는 계획을 내놔 강 대 강 대결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운송 복귀 거부·방조자 사법처리”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관계장관회의 후 연 브리핑에서 “정유 철강 석유화학 등에서 3조원 규모의 출하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 1269개 건설 현장 중 60%인 751개 현장에서 레미콘 타설 중단 등 재고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추 부총리는 “운송을 거부하는 차주에게는 유가보조금 지급을 1년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대상에서 1년간 제외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업무개시명령 거부자는 6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여기에 각종 불이익을 추가해 업무 복귀를 압박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운송 복귀를 거부하거나, 다른 화물차의 운송을 방해하는 등의 행위에는 사법조치를 예고했다. 추 부총리는 “업무개시명령 거부자와 거부를 방조·교사하는 자는 전원 사법처리할 것”이라며 “미참여 차주 등을 폭행·협박하거나 화물차량을 손괴하는 경우는 현행범으로 체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위해 보복범죄 전담 수사팀을 경찰에 설치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합동 대응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물류대란을 막기 위한 대응책도 내놨다. 정부는 자가용 유상운송 허용 대상을 8t 이상 일반용 화물차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유조차 외 곡물·사료 운반차까지 자가용 유상운송 대상에 포함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한다. 대체 투입하는 군 위탁 컨테이너도 늘릴 계획이다.물류난이 심화하면 정부는 정유·철강·석유화학 업종에도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계획이다. 추 부총리는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위한 제반 준비를 완료했으며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발동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운임제 못 박겠다는 野민주당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영구화)를 핵심으로 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강행으로 대응할 태세다. 민주당은 오는 9일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를 열어 화물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처리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민주당이 지난 2일 여당 참여 없이 개정안을 법안소위에 단독 상정한 데 이은 것이다.민주당이 이처럼 ‘입법 독주’에 나서는 것은 ‘노동계 챙기기’와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국회 관계자는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패배하고, 이른바 ‘노란봉투법’ 처리도 미적대는 것에 민주노총 불만이 클 것”이라며 “과거에 비해 조직 규모가 커진 만큼 민주당은 민주노총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정부와의 협상 가능성이 줄면서 민주노총은 국회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1일부터 국회 국토위 의원들에게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국토위 의원 30명 중 26명의 휴대폰 번호를 올렸다. 여당의 한 국토위 의원은 “하루 70~80개의 문자가 쏟아져 휴대폰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지경”이라고 했다.노정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이번 파업이 역대 최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3일간, 올해 6월 7일간 파업을 벌인 바 있다. 2016년에는 10일간 파업을 이어갔다.김인엽/양길성/곽용희 기자 inside@hankyung.com
경찰이 화물연대 조합원의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총파업 불법행위와 관련해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비조합원 차량에 쇠구슬을 발사하거나 경찰을 폭행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부산경찰청은 4일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해 운송방해 등 불법행위 9건을 수사해 화물연대 조합원 7명(4건)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중 화물연대 김해지부 조합원 A씨 등 3명에 대해 특수재물손괴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이들 가운데 쇠구슬을 쏜 1명이 이날 구속됐다. 승용차 운전 등을 통해 범행에 가담한 나머지 2명은 풀려났다.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26일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 인근에서 새총 모양 도구를 이용해 비조합원이 운행하는 트레일러 차량 두 대에 쇠구슬을 쏴 앞유리와 안개등을 파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인근에 있는 트레일러 차량에도 쇠구슬을 발사해 유리창을 파손했다. 이들이 범행 직전 인근 도로를 향해 쇠구슬을 쏘면서 연습하는 장면도 폐쇄회로TV(CCTV) 영상에 포착됐다.경찰은 지난달 29일 부산신항에서 운행 중이던 트레일러에 라이터를 던진 조합원 1명과 경찰관에게 물을 뿌리고 밀치는 등 폭행을 가한 혐의로 다른 조합원 2명을 업무방해 및 공무집행방해로 입건했다.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
“불법과 범죄를 기반으로 하는 쟁의 행위에는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 (2일 수석비서관회의)”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은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11월 29일 국무회의)”노동계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사진)의 발언이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법과 원칙을 앞세워 불법파업 관행을 끊겠다는 윤석열식 ‘스트롱맨 리더십’이다. 이를 통해 보수층이 결집하고 지지율은 상승했지만,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업 내내 “타협은 없다”윤 대통령의 강경 메시지는 지난달 24일 화물연대가 집단운송거부에 돌입한 시점부터 시작됐다. 파업 첫날 윤 대통령은 페이스북에서 “무책임한 운송거부를 지속한다면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포함해 여러 대책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파업이 이어지자 윤 대통령은 “타협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달 2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타파하고 근로조건의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 노동 문제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일관된 기조”라고 했다. 다음날 “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지난 1일 윤 대통령이 “화물 운수종사자 여러분도 업무 중단을 끝내고 경제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하자 일각에서는 이것이 ‘유화적인 제스처’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다음날 일부 노조원의 불법 행위를 거론하면서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강경 대응을 이어 나갔다. “文정부 유화책에 파업 관행 굳어져”대통령실은 노동계에 대한 전임 정부의 유화적인 태도가 강성 노조의 영향력을 키웠다고 보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파업’ 얘기만 나오면 요구를 들어줬기 때문에 노조가 관성적으로 파업하게 됐다”고 말했다.현재 논란이 되는 안전운임제 역시 노동계가 파업을 통해 요구를 관철한 사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이 제도의 도입을 약속했고, ‘표준운임제’라는 이름으로 국정과제에 반영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는 문 전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인 2017년 7월 표준운임제 도입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듬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지시를 받아온 국토교통부가 패배주의에 젖어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양대 노총과의 관계를 중요시한 결과 정부 측이 협상 주도권을 잃었다는 뜻이다. 지지율 올랐지만…‘불통’ 이미지도집단운송거부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경한 대처는 지지율 소폭 상승으로 이어졌다. 한국갤럽이 2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보다 1%포인트 오른 31%를 기록했다.주목할 부분은 긍정 평가 이유다. 응답자들은 긍정 평가의 가장 큰 요인으로 ‘공정·정의·원칙’(12%)을 꼽았다. 전주 대비 7%포인트 오른 수치다. ‘노조 대응’(8%)과 ‘주관·소신’(6%), ‘결단력·추진·뚝심’(5%)도 긍정평가 요인으로 꼽혔다. 모두 파업에 대한 윤 대통령의 행보와 관련된 것이다.다만 동전의 양면처럼 ‘불통’ 이미지도 누적되고 있다. 윤 대통령 국정수행 부정평가 첫 번째 요인으로는 ‘소통 미흡’(12%)이 지적됐다. ‘독단·일방적’(8%)이 뒤를 이었다.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