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되면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수사에 더욱 속도가 붙고 있다.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한 또 다른 고위급 인사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조만간 소환 조사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수사 칼끝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향하게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민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고위 인사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판사는 “범죄의 중대성과 피의자의 지위, 관련자들과의 관계에 비춰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 전 실장은 구속에 앞서 10시간이 넘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역대 최장 기록이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해양수산부 공무원인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살해된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이씨가 스스로 월북했다고 몰아가기 위해 ‘자진 월북’과 배치되는 기밀 첩보를 삭제하도록 관계부처에 지시(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했다고 보고 있다. 국방부·국가정보원·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이 보고서나 보도자료에 허위 내용을 쓰도록 한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도 적용했다.

수사팀은 최근 이씨가 자진 월북이 아니라 실족해 바다에 빠져 북측으로 표류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나가 상당한 시간을 들여 해상 상황 등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5일 서 전 실장을 불러들여 진상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서 전 실장은 구속 수사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4일 입장문을 내 “방어권 보장을 위해 불구속 수사와 재판이 필요하다”며 “구속적부심 청구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임오경 민주당 대변인은 3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당시 판단과 달라진 정보나 정황이 없는데, 정부가 바뀌자 판단이 정반대로 뒤집히고 진실이 은폐됐다고 한다”며 “정권 입맛에 맞춰 결론이 정해진 정치 보복수사는 법정에서 심판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이 서 전 실장 신병 확보에 성공하면서 문재인 정부 대북·안보라인 윗선을 겨냥한 수사가 한층 힘을 받을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이른 시일 안에 박 전 원장을 불러들여 조사를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이씨 피살 직후 열린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사건 발생 당시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로 지난 7월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당하고, 8월엔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문 전 대통령이 수사 대상에 오를지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 지휘 체계상 서 전 실장이 대북·안보 현안을 보고한 ‘윗선’이 문 전 대통령이어서다. 문 전 대통령은 검찰이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직후인 지난 1일 입장문을 내 “도를 넘지 말라”고 비판하면서 “당시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직접 듣고 최종 승인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검찰이 서 전 실장 구속영장에 문 전 대통령의 혐의는 적지 않은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수사가 문 전 대통령까지 향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구속영장엔 박 전 원장과 서 전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 등만 서 전 실장과 공모한 인물로 기재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진성/이유정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