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이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한국형 원자로 수출과 관련해 미국 법원에서의 소송에 이어 국제중재까지 제기한 것이다. 법무법인 광장이 한수원과 한전을, 피터앤김이 웨스팅하우스를 대리한다. 한수원이 원자력발전소 수출에 고삐를 죈 가운데 미국에서의 소송전에 이어 국제중재까지 제기하면서 원자력계와 법조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수원 수출은 미국 허가 필요”

4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수원과 한전은 대한상사중재원(KCAB) 국제중재센터에 중재를 제기했다. 지난달 21일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가 컬럼비아특구 연방지방법원에 한국형 원자로 수출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 이번 국제중재 사건의 발화점이 됐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자력 발전 원천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과거부터 국내 원자력계와 협력 관계가 이어졌다. 국내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는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전수받아 지어졌다. 2000년 웨스팅하우스가 인수한 컨버스천엔지니어링(CE)과 한국 정부는 1987년 기술전수 계약을 맺기도 했다.

국내 원자력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 각지에 수출을 추진하면서 웨스팅하우스의 견제도 이어지는 양상이다. 웨스팅하우스는 CE의 원자로 ‘시스템80’ 디자인을 기반으로 ‘APR1400’이 개발됐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한수원이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선 본래 기술을 가진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에너지부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게 웨스팅하우스 측 주장이다.

로열티 지급 없이 국내외에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실시권’이 기술사용 협정문에 명문화돼 있다는 점이 한수원 측 반박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아울러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가 맺은 계약에는 분쟁이 발생할 때 소송전이 아니라 KCAB 중재로 해결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한수원 측은 “중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소송은 잠정적으로 중단돼야 한다”고 미국 재판부에 요청할 전망이다.

원전 수주전 곳곳에서 맞붙어

최근 한국 정부가 원전 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수주를 놓고 세계 곳곳에서 맞붙고 있다. 한수원은 폴란드 원전 사업 수주전에서 웨스팅하우스와 경쟁을 벌였다. 폴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6~9GW(기가와트) 규모 가압경수로 6기 건설 사업 수주전에선 웨스팅하우스에 밀렸다. 그러나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에 건설하는 민간 주도 2~4기 규모 원전 수주전에선 승기를 잡은 모양새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체코·네덜란드 원전 수주를 놓고서도 맞붙을 전망이다. 한수원은 지난달 말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발주 사업에 입찰서를 냈다. 이번 수주전에는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전력공사(EDF)도 입찰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번 중재에서 한수원을 대리하는 광장의 국제중재팀은 임성우 변호사와 로버트 왁터 미국 변호사가 공동팀장을 맡았다. 웨스팅하우스를 대리하는 피터앤김은 론스타 사건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하면서 잘 알려진 국제중재 전문 로펌이다.

국제중재업계에 따르면 아직 KCAB 중재판정부는 구성되지 않았다.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감안할 때 중재 판정까지는 최소 1년이 걸릴 것이라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양측이 판정을 기다리는 대신 빠른 해결을 위해 합의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