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군사 요충지 강화도 전쟁사·유물 '한눈에'

[※편집자 주 = 인천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국내에서 신문물을 처음 맞이하는 관문 도시 역할을 했습니다.

인천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의 유산만 보더라도 철도·등대·서양식 호텔·공립 도서관·고속도로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연합뉴스 인천취재본부는 이처럼 인천의 역사와 정체성이 서린 박물관·전시관을 생생하고 다양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모두 30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 기사는 매주 토요일 1편씩 송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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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돋보기](21) 외세 침략에 맞선 호국의 역사…강화전쟁박물관
"육로로는 갈 수 없고, 뱃길 또한 몹시 험하다.

"
1232년 고려의 관리 '변여'는 강화도로 가는 길을 알아내려고 자신을 고문하는 몽골군에게 이렇게 말하며 대항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던 몽골이지만 강화도는 손에 넣을 수 없다고 호언장담한 것이다.

당시 몽골은 고려가 조정(朝廷·임금과 신하가 모여 정치하는 곳)을 강화도로 옮기고 항전 준비를 하자 분개하며 정벌에 나선 상태였다.

그러나 몽골군은 물살이 거세고 물결도 변화무쌍한 강화해협을 결국 건너지 못했고, 강화도를 눈앞에 두고서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강화도가 한반도에서 군사 요충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인천돋보기](21) 외세 침략에 맞선 호국의 역사…강화전쟁박물관
◇ 천혜의 요새 강화도…외세 대항 최적의 조건 갖춰
강화도가 과거 군사 요충지로 명성을 떨친 이유는 외세에 대항하는 데 최적의 지리적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는 서울시 면적의 절반 크기(305㎢)로 바깥으로 서해와 강화해협이 흐르고 안으로 곳곳에 높은 산이 솟아 있는 지형을 지녔다.

침략 세력을 관측하고 견제하기 수월해 예부터 천혜의 요새로 여겨졌다.

특히 예성강·임진강·한강·바다가 만나는 강화해협은 밀물 때 거센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위험천만한 물길이 되고 썰물 때 질퍽하고 넓은 갯벌로 바뀌어 선박이나 도보로 건너는 게 매우 까다로웠다.

뱃길을 잘 알지 못하는 외부 세력은 접근조차 어려웠다.

게다가 섬 안에서는 농업이 활발했고 주변 해역에서는 해산물이 풍부하게 잡혔기 때문에 외부 보급 없이 식량을 조달하며 군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고려는 대몽항쟁기(1232∼1269년) 때 수도 개경에 있던 조정을 강화도로 옮겼으며 몽골군의 잇따른 침략 시도에도 38년간이나 버티며 대항했다.

조선은 임진왜란 땐 강화도를 군사 지휘소로 삼아 왜군에 항전했으며, 이후에는 임금의 유배지나 백성의 피난처로 활용했다.

19세기 후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땐 이곳에서 프랑스·미국군과 격렬한 전투를 이어가며 서양 제국과의 항전 태세를 구축해 나갔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은 "과거 강화도는 군사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교통 요지이자 물류 중심지여서 외세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전쟁과 긴장이 연속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는 남북이 대치한 오늘날에도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인천돋보기](21) 외세 침략에 맞선 호국의 역사…강화전쟁박물관
◇ 치열한 격전 흔적 간직한 유적 곳곳에 즐비
강화도를 방문하면 우리 민족이 외세 침략에 대항했던 역사의 현장을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된다.

곳곳에 있는 성(城)·진(鎭)·보(堡)·돈대(墩臺) 등 옛 방어시설 유적에는 치열한 격전이 펼쳐졌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선 시대 신미양요와 운요호 사건이 일어난 '초지진', 고려 때 강화해협을 수호했던 '덕진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광성보' 등은 그 의미가 더 깊어 학생들에게 호국정신을 가르치는 현장학습 장소로 유명하다.

특히 강화대교를 건너 섬에 들어오자마자 마주치는 '갑곶돈'은 대몽항쟁기·정묘호란·병자호란·병인양요 등 강화도의 주요 전쟁을 거친 곳이어서 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방문객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유적이다.

'갑곶'이라는 이름은 고려 때 몽골군이 강화해협을 건너려다 실패하자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우면 건너갈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한탄한 데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유적은 과거 전쟁으로 크게 훼손됐으나 1970년대 우리 정부가 호국의 상징으로 삼기 위해 대대적으로 복원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천돋보기](21) 외세 침략에 맞선 호국의 역사…강화전쟁박물관
◇ 강화도 전쟁의 역사를 한눈에…강화전쟁박물관
갑곶돈에 있는 강화전쟁박물관(연면적 993㎡·지상 2층)은 강화도 전쟁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애초 이곳에 있던 강화역사관이 강화역사박물관으로 독립하면서 2015년 개관했다.

연평균 관람객 수는 4만∼5만명이다.

이곳에서는 삼국시대 영토전쟁 때부터 6·25 전쟁 때까지 강화도에서 벌어진 격전의 순간을 글과 사진으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칼·도끼·활·포 등 실제 전쟁에 사용됐던 무기가 전시돼 있고, 성을 쌓는 옛 현장과 대몽항쟁기 전장도 실제 크기의 인형과 모형 시설로 재현돼 있어 볼거리도 풍성하다.

[인천돋보기](21) 외세 침략에 맞선 호국의 역사…강화전쟁박물관
특히 이곳에 전시된 '어재연 수자기'는 신미양요 때 어재연 장군이 광성보에 내걸었던 깃발로 우리 민족의 호국정신이 서려 있는 유물이어서 꼭 챙겨봐야 한다.

당시 어재연 장군은 미군의 화력에 밀려 패배하고 순국했다.

그러나 끝까지 맞서 싸우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오늘날에도 회자된다.

수자기는 가로 415㎝·세로 435㎝ 크기로 가운데에는 장수를 뜻하는 '帥(수)'자가 적혀 있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빼앗겨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다가 136년만인 2007년 장기 대여 방식으로 우리나라에 귀환했다.

현재 강화역사박물관이 1∼2년씩 대여 기간을 연장하면서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강화전쟁박물관에 전시된 수자기는 복제품이지만 진품과 크기·모양이 거의 똑같다.

강화전쟁박물관은 화∼일요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입장료는 무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