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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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봐? 초보 처음 봐?!' '보초' '당신은 뭐 처음부터 잘했슈?'

운전을 하다 보면 각양각색의 초보운전 표지 문구를 보게 된다. 다른 운전자들에게 배려를 부탁하는 게 아닌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표지도 종종 맞닥뜨린다. 8년째 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는 박 모(30대·남) 씨는 "어이없는 표지들을 볼 때마다 '양보해야 하나' 싶다"며 "초보운전 표지인지 아닌지도 모를 만큼 기괴한 것들도 봤다"고 말했다.

도로교통법 제42조 1항은 '혐오감을 주는 표지 등을 한 자동차를 운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혐오감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다 보니 실제 단속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9월 발간한 보고서 '초보운전 표지 제도의 해외사례와 시사점'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의 경우 운전이 미숙한 '초보운전자'에게 규격화된 표지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초보운전의 표지 형태 및 부착 여부 등이 자율에 맡겨져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표지는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부착 위치 등으로 인해 후방 시야를 제약해 오히려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외 주요국의 상황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일본의 경우 면허 취득 1년 미만인 이들에게 법정 초보운전 표지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면허 취득 후 3년의 수습 기간 법정 식별 기호를 부착하게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영국, 미국(뉴저지), 호주, 캐나다 등도 정식면허 발급 전 임시면허 기간에 특정 표지부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연습 면허 및 주행 연습 표지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이는 장기간의 수습 기간을 거쳐 운전에 익숙해진 후에야 정식면허를 발급하는 해외의 임시면허 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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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초보운전 표지 부착 의무를 법으로 강제한 적 있었다. 1995년 국회 내무위원회의 도로교통법 개정법률안 심사보고서를 보면 "면허 취득 1년 미만 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전체 사고의 12.4%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입법 취지로 초보운전 표지 부착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는 4년 만인 1999년 폐지됐다. 되레 이 제도를 악용해 초보운전자의 안전 운전에 고의로 위협을 가하는 등 장애를 주는 경우가 생겨나면서다.

다만 과거와 달리 우리 사회의 교통문화 의식이 개선되면서 초보운전 표지 의무 부착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교통문화지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문화지수는 80.87점으로 전년보다 1.93점 상승했다. 교통문화지수는 매년 전국 229개 시·군·구 주민을 대상으로 운전행태·보행행태·교통안전 등을 평가해 지수화한 것이다. ▷2018년 75.25점 ▷2019년 77.46점 ▷2020년 78.94점 등으로 매년 상승 추세에 있어 국민 교통문화 수준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보운전 표지 부착이 실제 사고 감소로 이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뉴저지는 2010년 21세 미만의 임시면허 등을 소지한 자가 정식면허를 취득하기 전 의무적으로 법정 인식표를 부착하게 하는 '데칼법'을 시행했는데, 2015년 '데칼법 시행 2년'에 대한 장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법 시행 이전 대비 충돌 사고율은 9.5% 감소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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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초보운전 의무 부착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일 초보운전자를 정의하는 기간을 현행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초보운전자 표지의 규격 및 부착 위치 등을 정해 이를 자동차에 부착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개정안은 김두관, 김종민, 김태년, 문진석, 서영석, 이용빈, 한준호, 허종식, 홍정민 등 민주당 의원들과 지난 5월 탈당한 박완주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김 의원은 제안 배경에 대해 "운전경력이 짧은 초보운전자는 다른 운전자의 양보를 구하고 사고 예방의 효과를 얻기 위해 다양한 형태·문구·디자인의 초보운전 표지를 자발적으로 부착하고 있지만, 표지 부착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통일된 규격 및 부착 위치 등에 관한 규정이 부재함에 따라, 후방 유리창에 표지를 부착하여 운전자의 시야를 제약해 오히려 교통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며, 다른 운전자들이 초보운전 표지임을 한눈에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제안 이유에 대해선 "현행법은 초보운전자를 '처음 운전면허를 받은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2년이라는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 운전이 능숙한 운전자까지 초보운전자에 포함하고 있다"며 "이에 초보운전자를 정의하는 기간을 현행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행정안전부령으로 초보운전 표지의 규격 및 부착 위치 등을 정하며, 이를 자동차에 부착하는 것을 의무화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도로에서의 교통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