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급등과 증시 침체 등으로 투자은행(IB)업계가 한파를 맞으면서 대형 로펌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해 높은 성장률의 토대가 됐던 인수합병(M&A)과 투자 유치 등 기업들의 투자 관련 자문 일감이 1년 만에 급감해서다. 기세등등했던 로펌들의 성장세가 한풀 꺾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년 만에 불어닥친 ‘찬바람’

M&A 일감 반토막…잘나가던 로펌, 성장세 꺾이나
20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이뤄진 국내 경영권 이전(바이아웃) 거래는 총 28조588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4% 감소했다. 금리 상승에 따른 인수자금 조달 부담 증가와 증시 침체로 인한 기업 몸값 하락 등이 겹친 여파다. 매수자와 매도자 측 모두 관망하는 분위기가 펼쳐지면서 거래 자체가 줄었다는 평가다.

거래가 급감하면서 로펌들의 M&A 법률자문 실적도 대폭 줄었다. 지난해 1000억원 이상 매출을 거둔 국내 7개 로펌 중 올해 M&A 법률자문 실적(9월 말 누적 기준)이 전년 동기보다 늘어난 곳은 세종 한 곳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앤장법률사무소와 태평양, 광장, 율촌, 화우, 지평 등 나머지 6곳 모두 지난해만 못 한 실적을 냈다. 한 대형 로펌 M&A 담당 변호사는 “특히 하반기 들어 신규 딜이 씨가 마르면서 법률자문 수임 기대를 접은 일부 변호사는 장기 휴가를 떠났을 정도”라며 “적어도 내년 초까진 가뭄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투자 유치 관련 자문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9월 국내 기업이 IPO(기업공개)와 유상증자 등 신주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 규모는 20조25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7% 감소했다. 스타트업 투자 유치 분위기도 꽁꽁 얼어붙었다. 9월 국내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자금 규모는 3816억원으로 올 들어 처음 5000억원을 밑돌았다.

내년엔 분쟁·구조조정 효과 보나

이 같은 상황에서 중대재해 자문이 새 수익원으로 등장해 기업 투자 관련 자문의 부진을 다소 상쇄하고 있다.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도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로펌을 찾는 기업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후 9월 30일까지 발생한 중대재해는 총 443건에 달한다.

일감이 꾸준히 증가하는 금융규제 분야도 효자로 꼽힌다. 각종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및 환매 중단 사태에 따른 소송·자문 수요가 여전한데다 핀테크, 암호화폐,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새로운 금융산업이 탄생하면서 관련 규제 리스크를 파악하려는 기업이 적지 않다.

검찰이 5월 이른바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부활시키는 등 금융범죄에 대한 강력한 수사 의지를 보이는 것도 금융규제 자문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그럼에도 M&A 자문 등이 줄어든 충격을 완전히 보완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다. 어느 정도의 성장세 둔화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어두운 경기 전망에도 로펌들은 내년엔 영업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금융, 증권, 부동산 등 주요 시장이 침체된 여파로 이해관계자 간 분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9월 미래에셋금융그룹과 브룩필드자산운용이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매매 무산에 따른 보증금 반환 여부를 두고 중재 절차에 돌입하는 등 이 같은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는 분위기다.

M&A 시장에서도 경영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새 주인을 찾거나 사업을 매각하는 구조조정 성격의 거래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이와 관련한 자문뿐만 아니라 기업 파산·회생 자문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