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건물 단위 분쇄기 도입' 타당성 조사…윤석열 대통령 공약
10년 전 합법화 후에도 찬반논란 계속…하수처리비 증가vs자원화 용이
'관리방치' 음식물쓰레기 분쇄기 81만대…'건물단위 설치' 추진
합법화 이후 10년간 81만대가 넘게 팔렸지만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음식물쓰레기 분쇄기. 정부가 '개별 가정'이 아닌 '건물 단위'로 분쇄기를 설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추진한다.

분쇄기가 건물 단위로 설치되면 당국이 관리·감독하기가 쉬워진다.

3일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부는 최근 건물 단위 주방용 오물분쇄기 도입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

환경부는 "주방용 오물분쇄기가 2012년 합법화됐으나 허용할지를 두고 논란이 여전하다"라면서 "불법제품 단속에 한계가 있는 점과 분쇄된 오물이 하수도로 배출돼 수질오염을 일으키는 문제가 언론에서 지적되는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존재한다"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 제안서에서 '신도시'·'구도시'·'계획 중인 도시' 등 도시 유형이나 기존건물·신축건물·공동주택·단독주택 등 건물 유형에 따른 건물 단위 오물분쇄기 도입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오물분쇄기를 사용하면 하수처리 부담을 늘릴 수 있는 점과 기존 음식물쓰레기 종량제와 '형평성'을 고려해 분쇄된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는 방안 검토도 요청했다.

분쇄된 음식물쓰레기로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방안 마련도 요구했다.

'건물 단위 오물분쇄기'는 윤석열 대통령 공약이다.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공약집에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신축건물·단지는 분쇄기(디스포저)를 사용'이라는 공약과 '(음식물쓰레기를) 파쇄한 후 하수구에 배출하면 건물 하부 수거용기에서 회수해 바이오가스 생산'이라는 설명이 담겼다.

◇ 2012년 합법화 후 81만대 팔려…불법 '횡행'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2012년 합법화됐다.

다만 '음식물쓰레기 분쇄물 20% 미만만 하수도로 흘려보내고 나머지 80% 이상은 회수해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라는 조건이 붙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판매된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누적 81만6천여대다.

연도별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량은 꾸준히 늘어 2013년엔 849대에 그쳤으나 2019년엔 21만7천여대에 달했고 작년엔 11만여대가 팔렸다.

문제는 '분쇄된 음식물쓰레기 80% 회수' 규정을 지키지 않고 전부 하수도로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단속이 안 된다는 점이다.

환경부가 해마다 두 차례 벌이는 분쇄기 제조·판매업체 단속에서 분쇄된 음식물쓰레기를 전부 하수도로 흘려보내게 불법개조됐거나 인증받지 않은 분쇄기를 제조·판매해 적발된 업체는 2013년부터 작년까지 다 합쳐서 41곳에 그친다.

그런데 한국물기술인증원이 2017년부터 작년까지 시중에 유통되는 분쇄기 33개를 직접 사서 확인해보니 27개가 거름망이 설치되지 않은 등 인증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특히 인증원이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1년간 인터넷쇼핑몰을 감시한 결과 미인증 분쇄기를 파는 등 분쇄기 불법판매 페이지가 4천643개에 달했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4월부터 한 달간 일제 단속을 벌여 중국산 주방용 오물분쇄기를 국산으로 속이거나 전기용품안전인증(KC인증)을 허위로 한 업체 3곳을 적발했다.

이때 적발된 분쇄기가 14만여개에 달했다.

인증이 '눈 가리고 아웅' 식인 문제도 있다.

상하수도협회 조사에서는 분쇄기 80%가 처음 인증받을 때와 사양이 달라진 채 유통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정상 분쇄기를 판매한 뒤 각 가정에 설치하면서 개조해주는 경우는 사실상 단속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 하수처리비용 늘리지만…'오히려 친환경' 주장도
'관리방치' 음식물쓰레기 분쇄기 81만대…'건물단위 설치' 추진
한해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는 2020년 기준 516만t(톤)이다.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는 전체의 75% 정도다.

1995년 음식물쓰레기 종량제와 2005년 음식물쓰레기 직매립 금지로 재활용률이 크게 올라 현재 90% 수준이다.

음식물쓰레기 70~80%는 사료 또는 퇴비가 되고 15% 정도는 바이오가스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주방용 오물분쇄기를 사용하면 하수처리 비용이 증가한다.

재작년 환경부는 현재 규정에 맞는 분쇄기가 모든 주택에 설치되면 하수처리시설을 증설하는 데 7조8천813억원이 들고 하수처리시설 운영비는 연간 1천959억원씩 더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분쇄기가 오히려 비용을 줄이고 '친환경'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음식물쓰레기를 분쇄해 하수도로 버리면 하수도가 '운반로'가 되므로 인력과 차량을 동원해 음식물쓰레기를 수거·운반하는 비용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전염병 때문에 음식물쓰레기를 사료로 재활용하지 않는 방안이 추진되는 상황이므로 분쇄를 통해 바이오가스 생산에 활용하는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오물분쇄기가 늘어나면 하수관로가 막히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우려일 뿐이라는 반박이 함께 나온다.

한국환경연구원이 7월 발간한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현안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외 분쇄기 시범사업이나 실제 이용사례에서 음식물쓰레기 분쇄물 탓에 하수관로가 막히는 문제가 발견된 적은 없다.

연구진은 "(음식물쓰레기 분쇄물 관련한) 오염부하량과 하수 월류수 발생량에 대한 국내 자료가 부족하므로 하수관로가 양호한 지역에만 분쇄기를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주환 의원은 "음식물쓰레기 분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허용 여부를 둔 찬반 논란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라면서 "현재 음식물쓰레기 분리배출 방식에 문제가 없지 않은 데다가 분쇄기가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줄일 복안이 될 수도 있으므로 정부가 서둘러 최적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