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복집 사건' 변경 판례 적용…아파트 공용 부분에선 침입죄 인정
개방된 상가 1층서 추행…대법 "주거침입죄는 적용 안 돼"
상가 1층에서 여성을 추행한 사람에게 '주거침입'과 '강제추행'이 결합한 성폭력처벌법 조항을 적용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일반인이 드나드는 개방된 영업장소에 외형상 문제없는 방식으로 들어간 것을 '침입'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주거침입 강제추행, 카메라 등 이용 촬영·반포 등)과 공연음란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4월 한 PC방에서 B양(당시 17세)의 다리 부위를 촬영하고 홀로 음란행위를 했다.

1시간 뒤에는 귀가하는 B양이 아파트 1층 계단을 오르는 틈에 강제로 추행했다.

A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날 밤 인근 상가 1층에서 C양(16세)을, 다른 아파트 1층에선 D양(17세)을 비슷한 방식으로 추행했다.

1심과 2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 8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C양을 상대로 한 상가 1층 범행만큼은 다시 재판해야 한다며 2심 판결을 파기했다.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제추행'은 '주거침입'(혹은 건조물침입)과 '강제추행'이 결합한 범죄이므로 두 죄가 모두 성립해야 한다.

그런데 A씨는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상가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들어갔으니 '건조물침입'으로 볼 수 없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이 같은 판단은 올해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초원복집 사건' 판례를 변경하면서 만든 주거침입 법리에 따른 것이다.

주거침입죄는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하기 위해 적용되는데,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영업장소에 '들어간 것'만으로는 평온상태를 해치지 않았으니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당시 대법원은 영업주가 A씨 같은 사람의 실제 건물 출입 목적을 알았다면 진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 같더라도 주거침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대법원은 B양과 D양을 상대로 한 범행은 그대로 '주거침입 강제추행' 유죄를 인정했다.

다가구용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은 내부의 엘리베이터나 계단, 복도 등 공용 부분도 거주자의 평온을 위해 보호해야 하므로 영업장소에서와 달리 주거침입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주거 등의 용도와 성질, 외부인 출입의 통제·관리 방식과 상태 등에 따라 '침입'에 해당하는지가 달리 평가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