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소송에서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 판결이 확정됐더라도 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망간에 노출돼 파킨슨증에 걸린 용접 근로자 A씨 유족이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1985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A씨는 선박 용접일을 하다 2008년 파킨슨증 진단을 받았다. A씨는 2010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A씨는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당시 법원은 ‘망간 또는 그 화합물에 노출되는 업무에 2개월 이상 종사하거나 종사한 경력이 있는 근로자에게 파킨슨증 증상 또는 소견이 나타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는 옛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시행령을 근거로 A씨의 파킨슨증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A씨는 2015년 사망했고 유족은 “A씨가 파킨슨증에 걸린 것은 현대중공업의 보호의무 위반 때문”이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취급한 용접 제품에 망간이 일부 함유돼 있고 일부 작업자의 노출 기준치 초과 사실이 확인돼 보호의무 위반은 인정되지만, 업무와 질병 간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엔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유족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행정소송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고 해서 민사소송인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반드시 보호의무 위반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 판단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