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재판과 두 번의 재심 개시에 이어 이번까지 여섯 번째 재판
머리 길다고 끌려간 후 1년 만에 탈출했다가 복역…"명예 회복하겠다"

1980년 여름,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끌려간 삼청교육대를 목숨 걸고 1년 만에 탈출했다가 복역한 60대가 40년 만에 이뤄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검찰의 항소로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23일 춘천지법 원주지원에 따르면 사회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은 박모(69)씨의 재심사건 1심 무죄 판결에 불복한 검찰이 지난 21일 항소장을 냈다.

검찰, '삼청교육대 탈출 60대' 재심 무죄 판결 불복해 '항소'
박씨는 1980년 8월 계엄 포고 제13호 발령에 따라 이른바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뒤 사회보호위원회로부터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며 5년간의 보호감호 처분을 받았다.

당시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의 한 군부대에 수용돼 감호 생활을 하던 박씨는 1981년 8월 17일 오후 8시 35분께 동료와 함께 감호시설 철조망을 넘어 탈출했다가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그해 12월 1심에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고, 이듬해인 1982년 4월 이 판결이 확정됐다.

우여곡절 끝에 40년 만에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2단독 이지수 판사 심리로 열린 재심에서 박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삼청교육대 탈출 60대' 재심 무죄 판결 불복해 '항소'
이 판사는 "피고인은 계엄 포고에 따라 구금됐고, 보호감호 결정으로 감호시설에서 수용 생활 중 도주한 일로 사회보호법 위반죄로 처벌받았다"며 "이 사건 계엄 포고는 애초 위헌이고 위법해 무효"라고 밝혔다.

이어 "비록 구 사회보호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나 법원의 위헌성 판단이 없지만, 계엄 포고가 위헌·위법한 이상 이를 통해 불법 구금된 피고인이 감호시설에서 도주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0년 만에 무죄를 받았지만,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린 탓에 박씨의 삶은 이미 피폐했다.

박씨는 검찰의 항소에 대해 "당시 두 번의 재판과 두 번의 재심 개시 재판에 이어 이번 항소심까지 여섯 번째 재판을 받게 된 셈"이라며 "국가폭력에 짓밟힌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해서라도 명예 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저 '국가가 미안했다'고 한마디라도 사과나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