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우울증 내원 환자 5년새 127% 증가…10대 증가율도 90%대
기성세대는 '뭐가 그리 힘드냐'지만…"미래의 보상 불확실한 세대"

김모(24) 씨는 입시 부담에 시달리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음을 처음 느꼈다.

책을 눈으로만 볼 뿐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이 자주 발생했다.

그는 "롤러코스터에 앉아 책을 보는 것처럼 글자만 눈에 들어오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망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우울감이 날로 심해졌다.

결국 목표로 삼은 대학이 아닌 다른 학교에 입학했다.

함께 입시를 준비하던 다른 친구들은 원하던 바를 이룬 터라 심리적 타격은 더 컸다.

한 학기를 다닌 뒤 대입을 다시 준비하기로 하고 '반수'를 시작했다.

재수생이라 추석 연휴에도 집에서 혼자 책을 잡던 김씨는 불현듯 죽고 싶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앞뒤로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너무 슬퍼서 종일 울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자신이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느낀 김씨는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놨고,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했다.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하면서 수험생활을 계속했고, 결국 원하던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취업을 위해 또다시 중요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시험 합격과 취업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우울증도 계속됐다.

한번 우울감이 시작되면 사나흘 동안 기분이 마구 곤두박질쳐 지금도 약을 먹는다.

김씨는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돼 왔고, 이제는 지쳐서 시험을 준비하기도 싫고 노는 것조차 싫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시험은 봐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며 "시험이 끝날 때까지 증상이라도 완화하려고 병원에 계속 다니면서 약을 처방받을 것"이라고 했다.

[1020 정신건강] ① 희망 잃은 젊은 세대, 마음도 병든다
'미래 세대'인 10대와 20대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정신과 병·의원에 내원하는 환자가 수년 사이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자살률도 높아지는 등 여러 측면에서 적신호가 감지된다.

우리 사회가 이들 세대의 정신건강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살펴야 할 때다.

미래 세대의 건강한 마음을 지키는 방안을 기획 기사 2꼭지를 통해 모색해본다.

◇ 우울증 환자 급증·자살률 상승…20대 정신건강 '빨간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6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대표적 정신질환으로 꼽히는 우울증 환자는 2017년 69만1천164명에서 지난해 93만3천481명으로 5년 새 35.1% 늘었다.

이 기간 전 연령대에 걸쳐 환자가 늘었지만, 20대의 경우 2017년 7만8천16명에서 2021년 17만7천166명으로 급증해 증가율이 127.1%였다.

10대도 3만273명에서 5만7천587명으로 배 가까이(90.2%) 뛰는 등 전체 평균 증가율을 한참 웃도는 현상이 10·20대에서 나타났다.

[1020 정신건강] ① 희망 잃은 젊은 세대, 마음도 병든다
불안장애 역시 같은 기간 전체가 65만3천694명에서 86만5천108명으로 32.3% 증가했는데, 20대가 5만9천80명에서 11만351명으로 86.8%, 10대가 1만7천763명에서 3만1천701명으로 78.5% 늘어나는 등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전 연령대 가운데 젊은 층의 증가율이 최상위권이었다.

정신건강 척도 중 하나인 자살률에서도 이들 세대의 심각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국내의 자살 사망자는 전년 대비 4.4% 감소했고, 40대 이상 연령대는 모두 자살률이 줄었으나 30대 이하는 오히려 상승했다.

특히 20대가 12.8%, 10대 9.4%로 증가 폭이 컸다.

[1020 정신건강] ① 희망 잃은 젊은 세대, 마음도 병든다
◇ "'내일은 오늘보다 낫겠지' 희망 없는 세대…현실적 고통 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사람 간 접촉이 줄고 개인의 고립이 커짐에 따라 청소년 등 젊은 세대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분석은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됐다.

그러나 10·20대 우울증 환자 수가 절대적으로 증가하는 등 현상의 원인을 코로나 사태에만 돌리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근본적으로는 저성장 사회로 진입하면서 청년들에게 돌아갈 '파이'가 줄어 과거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와 달리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기 어려워진 상황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50대 이상 세대가 볼 때는 '먹는 문제'가 해결된 젊은 세대가 왜 힘들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1970~80년대는 엄청난 고성장 시기였다"며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고, 뭐든 열심히만 하면 보상받는다는 사회적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새로운 일자리는 부족하고, 그 때문에 집 마련이나 결혼 문제 등에 대해 지금의 10대나 20대가 마냥 전처럼 꿈을 품으며 살 수 있는 사회도 아니다"라며 "저출산 현상에서 나타나듯 그들의 현실적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1020 정신건강] ① 희망 잃은 젊은 세대, 마음도 병든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작년 11월 발표한 분석치에 따르면 연령대별 체감실업률에 연령대별 물가상승률을 더해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를 산출한 결과 청년층(15~29세)이 전 세대 중 가장 큰 경제적 고통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젊은 층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이 불리한 가운데, 이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온라인 공간 등에서 '한 방'에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의 콘텐츠가 난무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상대적 박탈감 등 심리적 타격이 한층 더 크기 때문이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에는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집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이라며 "그런 가운데 디지털 미디어에서는 '일확천금', '대박' 등이 지나치게 포장돼 설파되면서 젊은 층이 코인, 단기 주식투자 등 리스크가 큰 것들을 선택하다 성공하지 못하면 좌절하고 박탈감에 더 쉽게 노출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