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소설집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가 최근 11년간 시간강사로 일했던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과 주휴 연차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2월 31일자로 연세대에서 퇴직했지만, 퇴직금 등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다.

시간강사의 근로기준법상 보호 범위와 관련한 논란은 예전부터 있었다. 과거에는 대학 시간강사가 근로자인지 여부부터 문제가 됐다. 속칭 '보따리 장사'라고 불리며 특정 대학에 전속되지 않고 여러 대학에서 일을 하거나, 기본급·고정급을 받지 않는 업무상 특성때문이었다. 일종의 특고(특수고용형태근로종사자) 취급을 받았던 셈이다.

그러나 지난 2007년 대법원이 "대학 시간강사도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라는 확정판결을 내리면서 대학 시간강사가 근로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어진 상태다.

강사들 "수업 준비도 엄연한 노동"

퇴직금은 또 다른 문제다. 최근 대학 시간 강사들의 퇴직금 청구 소송이 곳곳에서 확산하고 있다.

강사의 퇴직금 소송에서 대학 측은 보통 '1주간 소정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근로자에 대해서는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4조 제1항을 근거로 든다.

비록 2019년 8월부터 시행된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은 '주 5시간' 이상 강의를 담당한 강사에게 학교가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지만, 대학 강사가 한 주에 맡는 수업이 3~4학점(시간) 정도라면 법문상으론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

결국 정 작가의 소송에서 추가 쟁점은 강사들의 근로시간이 강의 시간만으로 제한되냐는 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준비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다면 주 15시간을 넘기게 돼 퇴직금을 청구할 수 있다.

실제로 "강의 준비시간도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하급심 판결은 여럿 있다. 최근엔 광주지법이 지난 6월, 국립대인 전남대에서 25년 넘게 법학개론 등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로 근무했던 A씨가 퇴직금을 못 받았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2021가단2238)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이 소송에서도 국가는 "A의 평균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이므로 퇴직급여의 지급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강의를 준비하기 위한 연구, 자료수집, 수강생의 평가 및 그와 관련한 학사행정업무의 처리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시간강사의 근로 시간을 반드시 강의 시간에 한정할 수 없다"며 "강사가 단시간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4039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20년에도 서울중앙지법은 △강의 준비를 위한 연구와 자료 수집, 수강생 평가 및 관련 학사행정업무의 처리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점 △강의 외에도 수업계획서 작성 및 입력, 시험 및 성적평가, 성적 고지와 전산입력, 교육 이수 등의 시간 역시 근로시간에 포함시키는 게 타당하다는 점을 근거로 강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2019가단5230151).

특히 오랫동안 같은 과목을 강의해 강의 내용에 변경이 없거나 다른 대학서 강의를 했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법원 "기능 발휘하는 직업은 일반 근로자와 달라"

이 경우 일반 근로자의 업무 준비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데, 왜 강사의 준비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줘야 하냐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법원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법원 판결이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8월, 강 모씨 등 서울시립교향악단원들이 서울시향을 상대로 청구한 임금(연차수당지급) 청구 소송에서 "단원이 출근 않고 개인 연습을 한 날도 출근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공연과 단체연습을 위해 출근한 날만 근로시간으로 볼 게 아니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미 완성된 기량을 바탕으로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일반적인 근로자와 예술 분야 근로자는 다르다"며 "특별한 기능을 유지하다 공연에서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기량 유지는 근로자 자신 보다 사용자의 이익을 위한 측면이 크다"라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

가급적 근로시간을 확대해서 인정해주려하는 법원의 분위기가 읽히는 판결이다.

결국 재판에서도 일반 근로자의 근로 방식과 강사의 근로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강사법 시행 등 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가뜩이나 학령 인원 감소로 재정난을 호소하는 대학들은 되레 강사를 줄이고 정규직 교원들에게 일을 떠넘기거나, 강사들에게 주는 강의 시수를 5시간 미만으로 줄여가고 있다.

국내 대학에 고용된 강사 수는 2018년 1학기 5만8000명에서 2019년 1학기 4만7000여명으로 20%가량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사법 시행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정규직 교원 숫자도 줄여나가는 판국이니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대학의 항변도 이어진다.

가뜩이나 기초학문 연구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미래의 학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국가 교육의 질이라는 미래 성장 동력에 악영향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