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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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발생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침수 사태와 포항 남구 인덕동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인명 사고는 예고된 ‘인재(人災)’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포항시가 무리하게 하천 정비 작업을 벌이며 남구의 하천인 냉천의 물길과 자연배수로를 지나치게 좁힌 게 이번 침수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여기에 냉천 범람의 시작점이었던 노후 저수지엔 수문조차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로(용광로) 가동 중단으로 수천억원대 피해가 예상되는 포항제철소와 냉천 사이엔 차수막은커녕 물길을 돌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제방 시설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천 범람에 속수무책

7일 소방당국과 포스코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부 지하시설은 모두 침수된 상태다. 물을 빼는 데만 3~4일, 복구 작업까지 1~2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소방당국은 이날 소방차 수십 대를 보내 물을 빼내는 작업에 분주했다. 포스코 본사 역시 지하 2층까지 물이 가득 차 양수기 3대를 동원해 직원들이 물을 퍼내고 있다.

지난 6일 발생한 포항제철소 침수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하천인 냉천이 범람하면서 시작됐다. 냉천과 포항제철소는 가깝게는 2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냉천은 평소 물이 많이 흐르지 않는 하천이다. 가뭄을 걱정할 정도로 수량이 많지 않았다는 게 포항시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태풍 힌남노와 같이 갑작스러운 자연 재해엔 속수무책이었다.

우선 냉천과 공장 사이엔 별다른 차수막 없이 도로와 주차장 등의 시설이 있다.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을 5m 정도 쌓았지만 냉천 물이 불어나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천이 범람하자 인근 아파트로 물이 쏟아지면서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7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냉천은 지방 하천으로 도에서 유지보수비가 내려오는데 바닥이 말라버린 냉천에 큰 비용을 투자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천 상류 저수지(오어지)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6일 새벽 최대 500㎜의 기록적인 폭우가 이어지자 오어지는 금세 물이 찼고, 많은 양의 물이 냉천으로 흘러들어갔다. 택시기사 박모씨는 “오어지엔 제대로 된 수문조차 없이 낮은 뚝 하나로 관리하고 있다”며 “여기서 물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이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피해 복구도 ‘한·미 연합’ >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를 본 경북 포항시 오천시장에서 7일 한·미 해병대 장병들이 피해 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  /연합뉴스
< 피해 복구도 ‘한·미 연합’ >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를 본 경북 포항시 오천시장에서 7일 한·미 해병대 장병들이 피해 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 /연합뉴스

주민 요구 묵살한 포항시

전문가들은 포항시가 침수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한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냉천 8.24㎞를 대상으로 시행한 하천 정비사업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설명이다. 하천 둔치에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조성해 눈으로 보기엔 좋았지만 하천 범람엔 취약했다. 하천 폭이 좁아진 데다 땅 위에 시멘트 등이 깔리면서 자연 배수 기능이 저하됐다. 주민들은 하천공사로 인한 하천 범람을 우려해 상류에 댐 건설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묵살당했다. 하천 관리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냉천 총괄관리는 경상북도에서, 실질적인 유지·보수·관리는 포항시에서 하고 있다. 차수막과 제방 설치 등의 문제는 도와 포항시 측이 예산을 문제로 서로 떠넘겨왔다.

하천 관리 문제는 지난달 8일 발생한 수도권 집중호우 때도 나왔다. 서울 도림천은 태풍이 상륙했을 때도 하천 진입 차단봉과 펜스가 망가진 상태였다. 도림천 관할인 영등포구 관계자는 “설치비용만 1000만원일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라며 “시청에 예산을 신청해 처리하는 중이지만 복구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는 전체 기본 계획만 세울 뿐이고, 망가진 시설이 있으면 어떻게 수리할지는 구청이 결정하는 사항”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김학렬 서경대 교수는 “하천 범람에 대한 책임 소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시내 곳곳에 빗물을 받아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강호/이광식/포항=권용훈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