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은 2일 서울시극단장에 연극연출가 고선웅(사진)을 임명했다. 단장 임기는 3년. ‘귀토’,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홍도’, ‘칼로 막베스’ 등 연극과 창극 뮤지컬을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왔다.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총연출을 했다.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올해의 연출가상,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최우수 예술가상, 제70회 서울특별시 문화상 연극 부문 등을 수상했다.
두 배우가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등장합니다. 극이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관객에게 말을 겁니다. 극 중 몽둥이로 때리고 맞는 장면이 많은데 아무리 세게 쳐도 아프지 않은 연극 소품이니 놀라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서로 때리고 맞는 시범도 합니다. 그러고는 관객 체험형 선물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몽둥이로 실제로 맞아보고 아프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관객에게 ○○제약의 ○○연고를 준다는 건데요. 대학로 상업극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협찬 광고를 재치 있게 곁들여 잠시 배우와 관객이 어울려 놉니다.지난 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한 극공작소 마방진의 신작 '회란기'는 공연 직전부터 관객에게 '연극=놀이'임을 일깨웁니다. 인간의 본성인 '놀이성'이 풍부한 공연임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세트나 장치가 전혀 없고, 아무런 꾸밈도 없는 텅 빈 무대는 이른바 '연극적 약속'을 최대한 활용한 공연임을 알려줍니다. 곧이어 등장하는 인물들의 분장이나 의상도 캐릭터의 특징을 관객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선에서 최소화합니다. 이런 무대에 대한 연출의 변은 비슷합니다. 관객이 다른데 신경 쓰지 않고 배우의 연기와 대사에 집중하게 한다는 건데요. 연극의 놀이적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도 발휘합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극의 '격(格)'이 떨어지는, 가벼워지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이번 작품은 연출가 고선웅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과 '낙타상자'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중국 고전 각색 극입니다. '회란기'는 원(元)나라 때인 1200년대 중후반 활동한 극작가 이잠부가 쓴 유일한 현존작입니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코카서스의 백묵원'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작품의 핵심 모티브는 구약성서 열왕기상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과 같습니다. 판결을 통한 친엄마 찾기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서 '양육권 분쟁'이 이슈가 됐음을 짐작게 합니다. 여기서는 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지혜로운 자의 존재를 전제로 합니다. '회란기'에서는 즉결처분을 내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판관 포청천이 솔로몬 왕의 역할을 합니다. 칼로 아이를 쪼개서 나누는 게 아니라 석회로 원을 그려 두 엄마에게 아이의 양팔을 잡아당기라고 합니다. 모성애를 염두에 둔,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예지력이 없으면 내릴 수 없는 무모한 명령이죠. 그러고는 이성적인 판결이 아니라 감성적인 판결을 내리죠. 법 조항과 판례를 따지는 현실 사회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석회 대신 백묵으로 원을 그려 줄다리기를 하죠. 두 작품의 공통점은 사실 이 장면밖에 없습니다. '백묵원'은 무엇보다 친엄마가 아니라 '진정한 엄마' 찾기라는 점에서 한수 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판결 장면까지 이르는 스토리는 제각각이고 꽤 깁니다. '회란기'는 일종의 사회풍자극인 '잡극(雜劇)'으로 분류되는데요. 그만큼 당시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선량한 장해당이 가족을 먹여 살리려 기생이 됐다가 동네 갑부 마원외와 눈이 맞아 첩으로 들어가 아들을 낳습니다. 악독한 본처 마부인은 불륜남과 작당해 남편을 독살하고 장해당에게 누명을 씌웁니다. 재산을 상속받을 욕심에 장해당의 아이를 자기 아이라 주장하고, 산파와 동네 이웃을 매수합니다. 마부인의 이중삼중 계략에 무기력하게 당한 장해당은 동네 관아 1차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포청천이 있는 개봉부로 호송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철없던 오라비를 만나 반전의 기회를 맞습니다. 뭔가 구린내가 나는 판결을 그냥 넘어갈 리 없는 포청천의 혜안과 장혜당과 오라비의 무죄 호소로 다시 재판이 열립니다.극은 예측 가능한 스토리를 단선적인 플롯으로 진행합니다. 지루해질 수 있는 뻔한 이야기를 유쾌하고 속도감 있게 전개합니다. 고선웅식 연출이 빛을 발합니다. 연출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푸르른 날에'에서 봤던 변형된 신파조 화법이 재등장합니다. 과장되고 가식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재밌는, 대사 전달력이 뛰어난 희극 화법으로 연출가들이 종종 이용합니다. 극의 서사가 무척 친절합니다. 등장인물들은 관객에게 직접 말하는 방백으로 극 상황을 반복적으로 설명합니다. 관객은 앞뒤 장면을 맞춰 극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떠먹여 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면 됩니다.인형 캐릭터를 활용한 연희적인 양식 등 각종 놀이적 기법으로 웃음과 즐거움을 줍니다. 자유소극장의 극장 구조를 영리하게 활용한 동선 연출로 극의 역동감을 높입니다. '연극 소품'인 몽둥이를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사용하는데요. 사실성과 놀이성을 동시에 살리며 시각적·청각적 쾌감을 줍니다. 졸음과 지루함을 쫓는 효과도 발휘합니다. 새도매저키즘적인 불쾌감을 줄 수도 있지만 관객들은 이미 공연 전에 예방주사를 맞은 상태입니다. 하이라이트인 판결 장면은 통쾌하기 그지없습니다. 포청천은 시원시원한 명령과 똑 부러지는 진행, 지혜로운 처사로 장해당의 누명을 쾌도난마식으로 벗겨줍니다. "진실은 파묻어도 햇빛에 드러나고, 거짓은 감추려 해도 쇠꼬챙이처럼 뚫고 나온다" 등 막힌 속을 확 뚫어주는 대사와 섬뜩한 형벌을 가차 없이 내리는 모습 등은 관객들에게 통쾌감과 일종의 대리만족감을 선사합니다.한마디로 유쾌·통쾌한 연극입니다. '장해당' 역 이서현, '마부인' 역 박주연, '포청천' 역 호산 등 마방진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입니다. 하지만 개그적인 요소와 장치, 놀이적 기법 등이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극에 활력을 주고, 놀이적인 재미를 주고, 드라마와 거리를 두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빈번하게 사용되다 보면 이 또한 식상해집니다. 극에 포함된 정극적인, 비극적인 면을 약화시킵니다. 연출가는 보도자료에 '연희적인 양식을 확대한 마방진식 대중극'을 표방했습니다. 대중극이라면 관객을 웃고 울려야 하는데 이번엔 울리는 쪽이 약했습니다. '막 무친 겉절이처럼 놀이성과 문학성이 풍부한 원형의 연극'이란 언급도 있는데요. 연출 의도대로 해학적인 거리극이나 마당극 느낌도 납니다만 더없이 가벼워졌습니다. 이전 고선웅 연극이 주던 묵직한 감동과 깊은 여운이 덜했다면 이 때문입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사진=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연출가 고선웅이 신작 연극 ‘회란기’를 다음달 5~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700년 전 고전을 원작으로 하면서도 현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은유의 향연이 펼쳐진다.회란기는 고선웅 연출이 ‘조씨고아-복수의 씨앗’ ‘낙타상자’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중국 고전 작품이다. 그는 2015년 초연된 ‘조씨고아-복수의 씨앗’으로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동아연극상 대상 등을 휩쓸었다. ‘낙타상자’로는 2019년 초연 이후 한국극예술학회의 올해의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회란기’는 원나라 때인 1200년대 중반 극작가로 명성을 누린 이잠부가 쓴 잡극이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작 ‘코카서스의 백묵원’과 ‘솔로몬 재판’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고 연출은 “막 무친 겉절이처럼 놀이성과 문학성이 풍부한 원형의 연극”이라고 소개했다.이야기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기생으로 살던 장해당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장해당은 동네 갑부 마원외와 진심으로 사랑해 그의 첩이 된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지만 곧 비극이 찾아온다. 이들을 눈엣가시로 여긴 마 부인이 남편을 독살하고 장해당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게다가 마 부인은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장해당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한다. 장해당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명판관 포청천은 바닥에 석회로 동그라미를 그려 그 안에 아이를 세운다. 그리고 아이의 어미가 누구인지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연극 회란기는 당시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통찰하면서도 다양한 은유로 현재를 떠올리게 한다. 이를 통해 소유욕,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 거짓 증거들, 모성애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고전 바탕의 작품이지만 어렵지 않아서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고 연출은 “예나 지금이나 연극은 관객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감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도 변함없이 쉬운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이번 작품은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인 고 연출이 단원들과 함께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기도 하다. 뮤지컬 ‘맘마미아’ 등에 출연한 호산, 연극 ‘보도지침’ 등의 무대에 오른 조영규를 비롯해 20여 명의 단원이 참여한다.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고선웅 각색·연출의 연극 ‘리어외전’(사진)이 14일 네이버TV와 V라이브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된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고선웅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극공작소 마방진이 지난 11일부터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상연하는 작품이다.‘리어외전’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오락적 요소를 더해 통쾌한 희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2012년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한 이후 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연극 ‘칼로 막베스’ ‘푸르른 날에’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뮤지컬 ‘아리랑’,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에서 보여준 고선웅 특유의 파격과 풍자, 해학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다.기본 설정은 원작과 동일하다. 리어왕과 세 딸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리어는 왕좌에서 물러나며 세 딸 거너릴, 리이건, 코넬리아의 효심을 평가해 통치권과 영토 소유권을 양도하려 한다.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 코넬리아는 자식으로서의 의무는 사랑과 존경뿐이라며 리어를 실망시킨다. 거너릴과 리이건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지만 곧 리어를 쫓아낸다.고 연출가는 이런 원작을 과감하게 비틀어 독특한 무대를 꾸며낸다. 연출 특유의 언어유희가 랩을 하듯 쏟아지는 ‘속사포’ 속에 가득 담긴다. 코러스를 내세워 무대를 박진감 있게 만든다. 캐릭터도 다르다. 원작에선 실성한 듯 나약해 보였던 리어가 이 작품에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말도 파격적이다. 이를 통해 부모와 자식 간 관계와 갈등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한다. 무대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는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15년차 극단이 된 극공작소 마방진 소속 배우들의 연기 호흡이 기대를 모은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하성광이 리어를 맡았다.공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축소됐다. 원래 총 11회차로 열릴 예정이었으나 8회로 줄었다. 관객의 앞과 뒤, 양옆 좌석을 비우는 ‘거리두기 좌석제’도 적용했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