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측정 정보처리 기술 개발 안성준 커브서프 대표

"전 세계에 없었던 미들(middle)웨어입니다.

"
공간검색 소프트웨어(SW) 개발 스타트업인 커브서프의 안성준(60) 대표는 작년 10월 세계 최대 비즈니스 인맥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 자사 보유 핵심 기술을 팔겠다는 짤막한 광고문(CurvSurf is for sale)을 올렸다.

이곳에 적시되지 않았지만 안 대표가 자체 개발했다는 기술을 넘기는 대가로 원하는 액수는 4억 달러(약 5천억원)다.

커브서프는 현재 개발 인력 6명과 디자인 담당 1명을 전체 팀원으로 두고 있다.

스타트업 중에서도 작은 규모로 볼 수 있는 커브서프는 도대체 어떤 기술을 갖고 있기에 자칫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처럼 비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세계 시장을 향한 '셀프 세일즈'에 나선 것일까?
[스타트업 발언대] "성배를 찾았습니다"
◇ 대기업 연구원 그만두고 독일 유학…대학 강단 거쳐 창업가로 변신
1985년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생산공학(석사)을 공부한 안 대표는 LG전자(옛 금성사)에 입사해 가전연구소에서 일했다.

당시 맡은 업무는 전자레인지 기구설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5년 만에 퇴사하고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의 대표적 응용공학 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연구협회(FhG) 산하의 생산기술자동화연구소(IPA)에서 3차원 측정 및 정보처리 기법을 연구·개발하면서 슈투트가르트대에서 2004년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15년에 걸친 유학 생활을 결산하는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잡은 것은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물체 정보를 수학 및 기하학적으로 분석해 처리하는 기술이다.

[스타트업 발언대] "성배를 찾았습니다"
논문의 이론적 근거는 독일 수학자 C.F 가우스가 고안한 최소제곱법(least squares method)과 이를 영국 수학자 K. 피어슨이 보완한 최단거리(orthogonal distance) 최소제곱법이었다.

이 논문은 당시 독일에서 외국인 저자로는 매우 드물게 '최우수'(summa cum laude, ausgezeichnet)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논문 내용을 응용해 상용화할 환경이 아니었다.

컴퓨터 성능이 턱없이 부족했고 3차원 측정 장비의 정확도나 속도가 미흡해 전반적으로 상용화를 이루기 위한 주변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논문이 빛을 볼 때까지 20년을 기다리기로 작정했다는 안 대표는 프라운호퍼 IPA에서의 연구 실적을 인정받아 컴퓨터공학과 부교수로 2005년부터 성균관대 강단에 섰다.

학생들에게 컴퓨터 그래픽스와 응용학을 가르치던 안 대표를 마침내 창업의 길로 이끈 계기는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이른 2012년 찾아왔다.

그해 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개최된 한 전시회(SPAR3D)를 돌아보던 중 자신의 논문 내용을 뒷받침해 줄 만큼 진화한 다양한 종류의 3차원 측정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만난 것이다.

그는 이듬해 주저하지 않고 성균관대를 나온 뒤 사재를 털어 꿈을 이루기 위해 커브서프를 세웠다.

"학문 분야마다 전공자라면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싶은 '성배'(Holy Grail)가 있어요.

저에겐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뤘던 3차원 측정 정보처리 원천기술이 바로 그 성배였습니다.

"
[스타트업 발언대] "성배를 찾았습니다"
◇ 모든 물체 속성 실시간 파악한다
안 대표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3차원 공간 속의 모든 물체는 모양, 크기, 위치, 자세라는 4가지 속성을 갖는다.

이들 속성은 로봇 작동, 물류 자동화, 자동차 자율주행, 건축·토목, 증강현실 구현, 게임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물체의 속성을 알아내는 것이 3차원 측정이다.

3차원 측정과 관련해 자율주행차에 장착되는 라이다(LiDAR) 외에도 스테레오 비전, 구조광 스캐너, CMM(3차원 측정기) 등 고가(高價) 장비를 활용한 다양한 기술이 개발돼 있으나 용도는 전문적인 분야에 국한됐다.

그러나 애플이 증강현실로 대표되는 일반 소비자 영역에서도 3차원 측정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에 맞춰 아이폰에 3D 카메라를 장착하기 시작하면서 3차원 측정 장비의 범용화가 급속히 진전될 환경이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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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원 측정 연결고리 '포인트 클라우드'
3차원 물체의 속성 정보를 수집하는 데 쓰는 도구나 방법이 다를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3차원 측정의 공통적인 결과물은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로 귀결된다.

측정 대상 물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점의 좌표가 모인 형태인 포인트 클라우드는 측정 정보(측정점)의 집합으로, 화면상으로 보면 구름 형태를 띠어 그런 이름을 가졌다.

안 대표의 박사 학위 논문에 바탕을 둔 커브서프의 3차원 측정 정보처리 원천 기술은 앱(애플리케이션)이 포인트 클라우드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지원하는 일종의 미들웨어다.

컴퓨터 구성에는 반도체로 대표되는 물리적 요소인 하드웨어, 사용자가 다양한 목적에 맞게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하는 앱(소프트웨어), 그리고 그 중간에 운영체제(OS)가 있다.

앱이 특정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수많은 미들웨어는 OS의 한 구성품이다.

커브서프가 3차원 측정 정보처리 기술로 개발해 '공간 속에서 찾아낸다'는 의미인 '파인드서피스'(FindSurface)라고 명명해 상용화(매각)를 추진하는 것은 OS에 편입될 수 있는 미들웨어다.

파인드서피스의 특징은 측정 정보 수집 대상을 기존의 직선, 평면, 원에서 원기둥, 원뿔 같은 곡면으로까지 확장해 모든 형상의 물체 정보를 실시간으로 오차 없이 뽑아낼 수 있는 점이라고 한다.

안 대표는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앱에 전달해 다양한 목적에 맞게 활용토록 지원하는 것이 파인드서피스 기능이라며 정보 추출 정확도와 속도 면에서 파인드서피스와 비교할 수 있는 미들웨어가 아직은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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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자율주행 등 응용 분야 무궁무진
커브서프는 스마트폰에 탑재되기 시작한 3D 카메라가 파인드서피스의 활용도를 높이는 호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애플 등이 파인드서피스의 독점적 사용권을 얻어 자사 제품 OS에 편입할 경우 더 많은 앱 개발자와 일반 이용자들이 물체의 속성 정보를 얻기 위한 공간 검색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글로벌 IT 기업들도 파인드서피스 같은 미들웨어를 개발해 왔지만 정보 추출 대상을 곡면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파인드서피스가 전 산업 분야의 핵심 미들웨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값어치가 별로 없던 포인트 클라우드에서 고부가가치 정보를 뽑아내는 파인드서피스 기술을 응용할 곳이 무궁무진하다며 대표적인 분야로 로봇 성능 고도화, 물류 자동화, 차량 자율주행, 건축·토목공사, 무기류 개발, 증강현실 구현, 광고, 게임 등을 들었다.

[스타트업 발언대] "성배를 찾았습니다"
안 대표는 3차원 측정 정보처리 과정을 텍스트(1차원), 이미지(2차원) 검색과는 다른 차원(3차원)인 공간 검색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물체의 모양 등 4가지 속성을 개별적으로 확인하는 행위(작업)라는 이유에서다.

커브서프는 3D 카메라가 붙은 아이폰으로 파인드서피스를 활용하는 앱을 만들어 성능검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간 검증에선 파인드서피스가 아이폰 Pro 12의 3D 카메라에서 생성되는 포인트 클라우드를 초당 20회 이상의 동작 속도로 처리해 5m 이내 거리에 있는 화면상 물체의 정확한 속성 정보를 실시간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 대표는 이를 증강현실 광고에 적용하면 현실 속의 공 모양 물체에 정확하게 밀착한 형태로 광고 문구가 흐르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에 적용한다면 정확한 동작으로 스스로 물체를 집어서 옮기거나 충돌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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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인드서피스' 기술 300KB 실행 파일로 공개
커브서프는 파인드서피스가 마이크로소프트(윈도), 구글(안드로이드), 애플(iOS) 같은 글로벌 IT 기업의 OS에 편입되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링크드인 등을 통해 공개 매각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매각 대상은 파인드서피스 기술에 관한 모든 수학적 내용을 담은 300킬로바이트(KB) 크기의 실행 라이브러리 파일이다.

이 파일은 사이즈가 사진 한 장 크기보다도 작아 실행 속도가 빠르고 모바일 기기나 반도체에 탑재하기 쉬운 것이 장점이라고 안 대표는 강조했다.

커브서프는 애플 아이폰 프로와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2(증강현실 헤드셋) 등에서 간편하게 동작하도록 설계한 이 파일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인터넷 호스팅 서비스인 깃허브(GitHub.com)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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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인 앱 개발자들이 사용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또 개발자들이 웹 브라우저를 통해 파인드서피스의 메커니즘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공간(https://developers.curvsurf.com/WebDemo)을 마련해 놓았다.

커브서프는 3차원 측정 정보처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글로벌 IT 기업들이 파인드서피스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총 35억원의 개발·운영 자금을 조달한 패밀리펀드(FF)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자 유치를 추진하면서 인수 가능성이 있는 글로벌 IT 기업과의 접촉을 인수·합병(M&A) 전문가에게 맡겨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안 대표는 "3차원 측정 정보처리 관련 커브서프 기술은 전 산업을 응용 분야로 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이라며 OS와 클라우드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글로벌 IT 기업 중에서 그 가치를 알아주는 한 곳에 독점적인 사용권을 넘기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