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 최 회장 "흙수저에 난독증…제가 성공했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돈 많은 부모도 없었지요. 게다가 난독증까지 있어요. ‘저 찌질이가 성공했다면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 아닐까요?”

켈리 최 켈리델리 회장(한국명 최금례·53·사진)은 25일 연 기자 간담회에서 그의 저서 <웰씽킹>의 인기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11월 출간한 자기계발서 <웰씽킹>은 지금까지 20만 부 넘게 팔렸다. 그는 “제가 평범보다도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최 회장은 20만 부 돌파를 기념해 이날 서울 광진구 세종대 대양홀에서 독자 2000명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조금이라도 앞자리에서 강연을 듣기 위해 입장 5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인 최 회장은 유럽에서 도시락 사업으로 연 매출 6000억원을 올리는 사업가가 됐다. 지금은 남미와 중동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몇 년 전 영국 선데이 타임스가 발표한 영국 부자 순위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축구 스타 베컴 부부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해 화제가 됐다.

최 회장은 전북 정읍 시골에서 6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부모가 집안 형편을 이유로 고등학교 진학을 만류하자 그는 홀로 상경했다. 그는 “편도 기차표를 끊어 서울에 왔는데, 그때 기차란 걸 처음 타봤다”고 했다. 서울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낮에는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했다.

그의 인생은 공장 기숙사 친구의 죽음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친구는 공장 일을 마친 뒤 학교로 가는 버스에서 백설기 떡을 먹다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급하게 끼니를 때우다 발생한 사고였다. 최 회장은 “그 친구도, 나도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공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었던 디자인 공부를 하러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고 했다.

디자이너를 꿈꾸게 된 계기도 우연이었다. 공장에서 난생처음 외국인을 봤는데 자신이 매일 만들던 와이셔츠가 그 외국인의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서를 써서 동생에게 맡겨놓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유럽으로 향했다. 최 회장은 “일본에 가보니 유행이 유럽에서 오고 있었다”며 “그래서 ‘봉주르’도 모른 채 프랑스 파리로 갔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의 패션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동업하며 사업에 첫발을 디뎠다. 결과는 참패였다. 그때부터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을 공부했다. 최 회장은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빚만 10억원이었다”며 “5년 안에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성공한 사람 1000명의 습관을 분석했다”며 “아마존 정글을 혼자 헤치고 가는 것과 누군가 지나간 길을 밟고 가는 건 천지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 아는지부터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동양 음식으로 도시락 사업을 하기로 정했다. 드니 하네칸 당시 맥도날드 유럽 최고경영자(CEO)와 스시 장인 야마모토 구니오를 무작정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최 회장은 악착같이 매달려 유럽 대형 마트 체인에 초밥과 김밥을 납품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웰씽킹>에서 성공 비결로 ‘롤모델’과 ‘시각화’를 꼽는다. 시각화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습관을 말한다. ‘돈’과 ‘부(富)’는 다르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는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인간관계, 마음까지 풍요로운 사람이 부자로, 남을 돌볼 줄 알고 사회에 공헌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며 “그래서 강연 등을 통해 사업 노하우를 나누려 노력하고 책으로 버는 인세 수익은 100% 기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켈리델리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뒤에도 유럽에 한국식 양념치킨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지구가 하나잖아요. 재능 있는 한국 젊은이들이 유럽 시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