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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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6시 서울 강남역 사거리. 퇴근 시간에 맞춰 직장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커다란 노트북 가방을 멘 남성이 걸어온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하는 한 엔지니어는 만나자마자 업무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자신을 짧게 소개하자면.
국내 대기업에서 받은 일감을 처리하는 5년차 인프라 엔지니어예요. 생소할 수 있겠지만 '서버 관리자'라고 쉽게 표현해도 될 것 같아요.

▷인프라 엔지니어가 뭔가요.
네이버나 쿠팡처럼 대규모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서버나 데이터베이스, 네트워크 등 거대한 IT 인프라가 필요해요. 이러한 소프트웨어 환경을 설계하고 관리·운영하는 직무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IT 시스템 인프라를 설계하거나 유지·보수하는 일을 해요. 출근하면 고객사가 작성해 놓은 업무 요청서를 확인하고 원하는 업무를 보조하죠. 예를들어 "서버를 2대만 늘려주세요", "이 IP 는 허용해 주시고 다른 IP 는 막아주세요" 등 이런 작업을 대신 처리해 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업무 만족감이 높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월급이 생각보다 적어요. 친구들은 서울 강남에서 엔지니어로 일한다고 부러워하는데 월급을 제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모임을 하면 ‘돈도 많이 벌면서 밥 좀 사라’는 말을 많이 듣거든요. 그럴 때마다 제 월급을 얘기하면 조용해집니다(한숨).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어떤가요.
대기업에서 지시하는 업무만 하다 보면 기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많아요. 화장실도 못가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성장한다는 느낌 보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다’는 생각이 앞서요.

▷월급이 어떻게 되나요.
세금을 다 제외하면 월 250만원 정도 받습니다. 포괄임금제라서 야근 수당, 식대를 모두 합한 금액입니다(웃음). 연봉인상률도 낮고 성과급은 쥐꼬리만큼 받죠. 저희 회사가 매출은 몇천억대로 두세 배씩 성장하는데 순이익은 적자거든요. 최대한 싸게 서비스를 공급해서 경쟁사와 치킨게임 중인 셈이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은 없나요.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부당한 업무 지시가 24시간 내내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건 불법입니다.고객사 직원이 하청 업체 근로자를 직접 지휘하면 파견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거든요. 저는 그동안 고객사가 하청 업체 직원에 직접 업무 지시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몰랐어요. 너무 당연한 듯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를 받았거든요. 업무 특성상 급하게 해야할 일이 자주 생겨서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조치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최근에 퇴사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지.
예상치 못하게 많은 업무가 한 번에 쏟아져서 팀원들 모두 정신없이 일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작은 실수가 생겼죠. 팀장은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고 책임을 미루기만 했어요. 왜 이런 실수가 생겼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하려고 하진 않더라고요. 이런 일이 반복될 때는 정말 뛰쳐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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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몇 시간정도 일하는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초과근무 하는 날이 많아요. 어림 잡아 50 ~ 55시간 정도는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해서 6시께 퇴근해요. 문제는 언제 야근이 잡힐지 예측 불가입니다. 오늘처럼 갑자기 무슨 일을 시킬 때도 있고요. 그래서 저녁 약속 잡는 게 부담스러워요. 매번 늦으면 상대방에게 너무 미안하니까요.

▷젊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사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저도 젊은 사람들이 많고 밝은 회사 분위기를 상상하며 입사했죠. 현실은 조금 달라요. 30대 후반 ~ 40대 중반대가 가장 많습니다. 코딩에 ‘코’자도 몰라도 이쪽 업계에서 오래 일했던 분들이 그대로 넘어오거든요. 고객사가 대기업이다 보니 대응하고 영업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이직할 생각은 있나요.
당연히 있죠. 어디로 갈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마음속에 항상 사직서를 품고 있어요. 기계처럼 일하지 않고 제 의견을 말하고 좀 더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IT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을 생각인지.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 열심히 코딩을 공부하고 취업 준비했는데 실망을 많이 했어요. 일부 실력있는 개발자를 제외하면 미래가 없는 것 같아요. 경쟁이 너무 심하고 직종을 아예 바꿔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뒤늦게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열정을 불태워보고 싶어요.

#직업 불만족(族) 편집자주
꿈의 직장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에서도 매년 이직자들이 쏟아집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이직을 염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大 이직 시대'입니다. [직업 불만족(族)]은 최대한 많은 직업 이야기를 다소 주관적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색 직장과 만족하는 직업도 끄집어낼 예정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직장 생활하는 그날까지 연재합니다. 아래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은 인터뷰 요청·제보 바랍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