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2년 법률시장을 외국에 개방한 지 만 10년이 지났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로펌들은 각자 다른 성적표를 받아보고 있다. 법률시장 개방 당시 대규모 자본과 경험을 앞세운 영국과 미국의 대형 로펌들이 한국 법률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현재는 외국 로펌 대부분이 국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로펌도 등장하는 등 외국 로펌 사이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진출 10년…희비 엇갈리는 외국 로펌들

올해 외국 로펌 27곳

21일 법무부에 따르면 2022년 4월 기준 국내에 진출한 외국 로펌 수는 27곳이다. 5년 전에 비해 줄어든 수치다. 2018년 31곳의 외국 로펌이 국내 사무소를 운영했다. 이후 2019~2021년에 29개로 감소했다. 이어 클리포드 챈스와 덴튼스가 서울에서 철수했다. 클리포드 챈스는 2012년 한국의 법률시장 개방에 따라 가장 먼저 서울사무소를 낸 외국 로펌 중 한 곳이었다.

한국 기업이 외국 로펌에 낸 법률 서비스 비용도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서비스무역수지 통계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외국 로펌에 지급한 금액은 지난해 15억2270만달러(약 1조8245억원)였다. 이는 15억7750만달러(약 1조8902억원)를 기록한 2020년에 비해 3.5%(5480만달러) 줄어든 수치다.

외국 로펌은 국내에서 분쟁 해결 업무를 할 수 없는 등 다양한 제약이 있다는 게 주된 이유로 꼽힌다. 외국 로펌은 국제 중재나 해외 송무 사건 등의 자문만 가능하다. 여기에 국내 대형 로펌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 변호사를 대거 충원한 것도 외국 로펌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국내에서 자문 업무를 할 수 있는 외국변호사(외국법자문사)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국내에 등록된 외국변호사는 총 212명으로 작년보다 5명 늘었다.

한 외국변호사는 “한국 법률시장 규모는 크지 않고 국내 로펌들의 입지가 굳건하다”며 “외국 로펌은 국내 로펌과 협업하는 방식이 많기 때문에 서울에서 사무소를 운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네 곳은 ‘100억원 클럽’ 입성

국내에 진출한 외국 로펌의 전체적인 약세 속에서 두드러진 매출을 보인 로펌도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외국 로펌 가운데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곳은 △커빙턴&벌링(커빙턴) △레이텀&왓킨스(레이텀) △클리얼리가틀립스틴해밀턴(클리얼리) △코브레&김(코브레) 등 네 곳이다. 이 중 커빙턴과 코브레는 해외 송무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레이텀과 클리얼리는 해외 인수합병(M&A) 등 자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레이텀과 커빙턴은 각각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을 대리해 미국에서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진행했다. 코브레도 메디톡스 대 대웅제약의 보톡스 관련 분쟁에서 대웅제약을 대리했다. 코브레 서울사무소 인원은 2015년 5명에서 시작해 2020년 15명, 현재는 20명 규모로 커졌다.

외국 로펌과 국내 로펌이 공동 대리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국제중재 부문에선 허버트스미스 프리힐즈와 아놀드&포터 등이 주목받고 있다. 허버트스미스는 한국 정부를 대리해 미국인 A씨가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ISDS)을 승소로 이끈 바 있다.

아놀드&포터는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ISDS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하고 있다. 또 다른 외국변호사는 “한국에서 잘나가는 외국 로펌들은 해외 M&A, 민사 사건, 기업 형사 사건, 국제중재 등 유형별로 입소문을 탄 업체”라며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내세워 한국에서 자리 잡은 경우”라고 설명했다.

오현아/최한종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