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다" 얘기하자…경쟁사 가면 소송 건다는 사장님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퇴사하겠다고 회사에 얘기하자 사장님이 부르셨습니다. 동종업계나 경쟁사에 가면 소송을 걸겠답니다. 그 이후 몇차례 불러서 비밀 유지 및 경업금지 서약서(동종 및 경쟁사 2년 이직 금지)에 서명을 요구합니다. 서명 안 하면 퇴직 처리를 해주지 않을 것이며, 해고 처리가 되면 퇴직금도 없다고 하네요. 서명하고 깔끔하게 나가라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주 한 직장인 HR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된 고민 사연이다. 대기업에서는 동종 업계는 물론 해외로의 인재와 영업 기밀 유출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런 장치를 마련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었다.

차근차근 풀어나가 보자. 사직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가 퇴직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근로자는 퇴직 의사를 서면 등으로 통지한 다음, 일정 기간(통상 한 달이나 1임금 지급기일 정도)이 지났다면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무단결근이 아니다. 해고나 징계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가는 마당에 무슨 상관이냐 할 수 있지만, 무단 결근 처리돼 임금을 못받는 기간이 길어지면 퇴직금 계산에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해고 당하면 퇴직금이 없다는 사장의 주장도 터무니없다. 1년 이상 근로를 했다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사장의 속뜻은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퇴직금을 못 받게 하겠다는 의미로도 풀이될 수는 있다.

하지만 임의로 퇴직금을 주지 않거나 자체 판단으로 손해배상금과 퇴직금을 상계 처리하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퇴직일 이후 14일이 지나도 지급이 안되면 곧바로 노동청을 찾아가면 된다.

회사가 뒤늦게 내민 '비밀 유지 및 경업금지 서약서'에는 서명을 거부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되레 회사가 반복적으로 서명을 강요한다면 형법상 강요죄 등 범죄가 성립할 수 있으며, 직장 내 괴롭힘까지도 성립될 수 있다.

◆경업금지 약정, 늘 유효한건 아냐

만약 어쩔수 없이 서명해버렸거나, 과거 채용 과정에서 서약서에 서명했다면 어떨까.

비록 법률상 계약이지만 무조건 유효한 건 아니다. 근로자가 일하며 기술을 배우고 네트워킹을 쌓은 분야에서 계속 일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이를 막는다면 생계까지 위협받게 될 수 있기때문이다.

대법원도 퇴직 후 경업금지 약정을 체결했어도 "헌법상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본다.

특히 △사용자의 이익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대가의 제공 유무 △퇴직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대법2009다82244).

바꿔말하면 직원이 일한 기간이 짧았거나, 퇴직 전 지위나 맡은 업무가 자체가 중요하지 않거나, 경업금지 기간이 너무 길거나, 금지 지역이 너무 넓으면 무효로 보는 경우가 많다. 법원은 통상 금지기간이 1년을 넘기면 길다고 판단하는 경향이다.

특히 보상 여부도 중요하다. 별다른 보상이 없이 손해를 배상 의무만 지는 경업급지 조항은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3억 위로금 받고 4개월만에 경쟁사 취업…법원 "돌려줘야"

반면 회사가 금전적 이익을 충분히 제시하고 근로자가 자발적 의사로 이를 받아들인 경우라면 약정이 유효할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 6월 금융권 근로자들이 자신의 전 직장이었던 신한라이프생명을 상대로 청구한 '확약서무효확인의소'에서 원심을 뒤집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2019다246696).

이 회사는 수년 전 희망퇴직을 받으면서 신청한 근로자에 대해 비밀유지의무와 퇴직 후 1년 동안 경업금지의무를 부과하는 확약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확약서에는 희망퇴직자에 퇴직금과 별도로 '특별퇴직위로금' 2억90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원복지연금·창업지원금·자녀학자금·장기근속휴가비 등 금품도 지급됐다. 대신 동종업계에 취업하는 경우 '특별퇴직위로금'을 반환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근로자들은 퇴직 4개월 만에 경쟁 업체로 취직했다.

이에 회사가 위로금 반환을 청구하자 근로자들은 "약정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원심인 고등법원은 약정이 무효라고 판시했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었다.

주된 쟁점은 '약관법 위반' 여부였지만, 대법원은 본안 판단에서 회사의 청구 회사의 청구가 적법하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재판부는 "경업금지 계약이 상당한 액수의 경제적 급부를 대가로 하고, 개별 근로자의 자발적 신청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근로기준법 3조와 4조가 정한 근로조건의 기준 및 상호 동등한 지위 하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례들을 종합해보면, 결과적으로 문제가 된 사례에서 근로자가 회사의 경업금지 서약 요청에 응할 의무는 전혀 없다. 설사 서약했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정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충분한 보상 등을 전제로 1년을 넘기지 않는 경업금지 약정은 유효하다고 보는 게 법원의 경향"이라고 덧붙였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