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찬스 합격자의 "나는 몰랐다" 주장이 통하는 이유
부정채용이 확인된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해당 근로자가 부정채용이 진행됐는지 몰랐다면 해고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는 최근 A은행이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이같이 판단했다.

B는 2016년 하반기 신입 공채에 지원해 합격했고 2017년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B가 채용 청탁에 의한 부정입사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은행 인사담당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

결국 대표이사, 인사 상무, 인사부장, 인사팀장 등이 서류전형 점수 미달로 불합격 대상인 지원자를 합격자로 처리하거나, 면접 시험 결과 불합격권인 지원자의 점수를 조작해 합격자로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인사담당자들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 받게 됐다.

회사는 부정채용이 확인된 자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권고사직을 제안했지만 B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B는 수차례 걸친 면담에서도 “부정 채용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나름의 준비를 해서 합격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며 권고사직을 거부했다.

결국 A은행은 B를 해고했다. 이에 B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고 노동위원회가 이를 인용하자 은행 측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은행은 "청탁을 통한 부정입사자에 해당하며 이는 은행의 인사담당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에서도 확인된다"며 해고가 정당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A은행 인사 규정에는 부정채용에 대한 징계 규정이 없었다. 다만 ‘그 밖에 명백한 퇴직사유가 발생하였을 때’ 퇴직시킬 수 있다는 포괄적인 규정만 있었다.

법원은 B에게 해고할만한 귀책사유가 없다며 중노위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 내부 규정상 해고 사유에 해당돼야 하며, 해고를 할만한 ‘중대한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지만 B에게는 '귀책'이 없다는 의미다. .

법원은 "(인사담당자들에 대한) 형사판결에서 B가 자기소개서 점수 C를 받아 서류전형 불합격권에 해당했던 점, 불합격 대상이었으나 서류전형에 합격한 것으로 처리된 지원자에 B가 포함된 점, 그 과정에 형사처벌 된 인사담당 상무가 개입된 점, 대표이사가 B에 대해 언급한 점 등이 B의 서류전형 합격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그러나 B가 채용절차의 공정성을 해하는 부정한 행위에 직접 개입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B는 아버지가 인사상무에게 지원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볼 증거도 없고, 정상적으로 입사한 것으로 알고 지냈다”며 “부정입사와 관련한 B의 귀책사유 있는 행위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은행 측은 “지원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아버지가 한 청탁으로 이뤄진 부정 행위의 이익을 받아 불공정하게 선발된 경우엔 지원자의 채용에 관한 부정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직권면직의 정당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내밀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대법원 판결은 인사 규정에서 ‘전형에 응시한 자가 부정한 행위를 했고 합격 또는 임용된 후 임용일 이전의 부정 사실이 발견됐을 때에는 합격 또는 임용을 취소하고 향후 응시자격을 박탈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라며 “이 사건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채용 관련 규정이 없는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어 “B의 아버지 인사 상무에게 한 구체적인 청탁이나 대가 약정 여부 등이 전혀 밝혀지지 않아 부정행위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며 “이 은행의 채용비리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어도 일차적으로 채용절차를 적정하게 관리·감독하지 못한 원고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시했다.

공채 서류전형 절차상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채용에 지원한 B에게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시도 눈길을 끈다. 한 채용 담당자는 ”기업이 평소에 채용 비리 관련 규정을 정비해 두고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채용 청탁으로 채용된 자가 몰랐다고 줄곧 주장할 경우엔 회사 입장에서 규정이 잘 정비되지 않은 경우엔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