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관문 인천에 日은행 우후죽순…대한천일은행 '맞불'
[인천돋보기]⑤ 민족은행-일제은행 격전지…개항박물관
오는 15일은 제77주년 광복절이다.

일제가 우리의 외교·통치 등 주권을 강탈한 것은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에 의해서지만, 경제수탈은 그보다 훨씬 앞선 1876년 강제 개항으로 본격화했다.

1876년 2월 강화도조약 이후 그해 10월 부산, 1880년 원산, 1883년 인천이 잇따라 강제 개항되면서 이들 도시는 일제 경제수탈의 전진기지가 됐다.

특히 수도 서울과 인접한 인천에는 일제 국립은행들이 앞다퉈 진출하며, 화폐 경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조선의 경제권을 빠르게 잠식해갔다.

[인천돋보기]⑤ 민족은행-일제은행 격전지…개항박물관
◇ 일제 국립은행 앞다퉈 진출…조선인의 삶 황폐화
지금도 인천 중구청 앞 신포로 23번길에 가면 불과 100m 거리 안에 일본의 옛 국립은행 3개의 건물이 10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1883년 일본 제1은행, 1890년 제18은행, 1892년 제58은행의 인천지점이 잇따라 문을 열자 이 거리는 '혼마치도리(本町通·본정통) 은행거리'로 불렸다.

제1은행 인천지점은 주로 조선에서 만들어낸 금괴와 사금을 싸게 살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점차 정치자금 거래, 관세 취급 업무까지 취급했다.

또 제18은행 인천지점은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18은행의 최초 해외 지점이었다.

중국을 상대로 한 면직물 중개 무역이 번창하자 수출입과 통관 업무의 중심지였던 인천에 지점을 개설했다.

또 오사카에 본점을 둔 제58은행은 인천 전환국에서 주조되는 신화폐와 구화폐의 교환을 목적으로 인천에 지점을 설치했다.

18은행과 58은행은 화물·돈·쌀을 담보로 높은 이자를 받고 대출해주는 업무를 병행했다.

조선인들은 일본인보다 더 많은 이자를 내야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조선인에게 받은 담보와 많은 이자는 대부분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고, 조선인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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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자본 은행의 반격…1912년 은행령 후 영업에 제약
일본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들의 수탈이 거세졌지만 조선 상인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민족자본의 중요성을 깨달은 조선 상인들은 외세 자본에 대응하기 위해 고종황제의 '윤허'로 자본금을 지원받아 1899년 1월 종로에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을 설립했다.

대한천일은행이라는 이름은 일본 제1은행을 의식해 '하늘 아래 첫째가는 은행'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1899년 5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 지점인 인천지점을 개설했다.

일본 제1은행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지금의 인천문화재단 건물터(중구 제물량로 195)에 천일은행 지점이 들어서면서 인천 은행거리는 민족자본 은행과 일제 국립은행들의 금융 격전지가 됐다.

1902년에는 황실이 직접 자본을 내 주주가 되면서 영친왕이 2대 은행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1903년에는 천일은행 본점과 인천지점 사이에 전화가 개통돼 당시 최고의 통신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전기통신 100년사'에는 천일은행 본점과 인천지점이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 가입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천일은행은 1911년 일제 외압으로 '대한'이라는 명칭을 빼고 '조선상업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됐고, 1912년 조선총독부의 은행령 공포 뒤에는 영업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이후 100여년의 세월 동안 한국상업은행·한일은행을 거쳐 현재 우리은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부평역사박물관 손민환 학예연구사는 "일제는 은행령 등의 조치로 일본 은행들의 자본 진출을 유리하게 조성하고 민족은행의 약화와 말살을 도모했다"며 "일본 은행들의 금고가 채워지는 동안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인천돋보기]⑤ 민족은행-일제은행 격전지…개항박물관
◇ 일본 수탈 은행의 변신…개항박물관으로 거듭나
조선의 경제수탈에 앞장섰던 일본 제1은행 건물은 지금은 개항박물관으로 거듭나,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2010년 문을 연 개항박물관은 1883년 인천항 개항 후 인천을 통해 처음 도입됐거나 인천에서 발생한 근대문화 관련 유물 7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1전시실은 인천과 서울 사이에 처음 도입된 우편제도와 통신제도와 관련된 자료 중심으로 전시돼 있고, 2전시실은 국내 최초 철도인 인천∼서울 간 경인철도 관련 유물들이 전시됐다.

3전시실은 개항기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갖췄고, 4전시실에는 우리나라 첫 근대식 조폐기관인 '인천 전환국'과 관련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은행 금고실로 사용됐던 4전시실에는 여전히 육중한 두께의 철문이 보존돼 있고, 금고 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비상구도 금고실 입구 위쪽에 남아 있다.

개항박물관 인근 옛 18은행은 현재 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어 광복절 연휴에 함께 관람할 만하다.

옛 58은행은 민간 협회 사무실로 사용돼 건물 밖에서만 관람할 수 있다.

개항박물관과 근대건축전시관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무료다.

[인천돋보기]⑤ 민족은행-일제은행 격전지…개항박물관
/연합뉴스